진짜 '아줌마'가 되고 싶어

화장하다 글쓰기

by 시린

우리,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척한다’가 최대 욕이었다.

김누구는 잘난 척해, 이누구는 아는 척이 심하고, 박누구는 이쁜 척해서 꼴값이고, 최누구는 집이 엄청 가난한데도 아닌 척한다니까. ‘누구’라고 이름이 언급되면 유죄선고를 받는 거나 다름없었다.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은근한 따돌림이나 눈흘김을 당하며 겉돌아야 했다.

쉽지 않았다. 우리 집은 퍽 못 살았고, 가난은 부끄러웠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다. 집에 전화가 없고, 실내 화장실이 없어 마당 끝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숨길 수도 없었다. 없는 전화와 욕실을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잘 사는 ‘척’하는 게 되니까. 부모님이 친구 데려오는 걸 안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며, 아무도 우리 집에 못 오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다. 여자애들은 종종 억지를 부리기도 하니까. 우리 사이에 집에 한 번 데려가지도 않냐며 서운하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절대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싸구려 면속옷과 구멍 난 양말 말고도 감춰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어떤 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지 않고 피곤했다. 가난하지 않은 ‘척’하면서 척하지 않는 ‘척’하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아니었을까. 솔직함에 대한 오랜 바람과, 조금은, 집착. 내가 부끄러웠고, 감추고 싶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자기가 미웠다. 솔직하지 못하다고, 당당하지 않다고 미워했다.

기말시험도 끝난 어느 수업시간. 여중생들은 당당하게 연애 이야기를 졸랐다. 국사 선생님은 친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대학교 여름방학 때, 친한 친구 D의 시골집에 가서 농사일을 도왔단다. 서너 명의 친구들도 함께였는데 명색이 손님이고 일솜씨라곤 없어 겨우 흉내만 냈고, D는 시골 출신답게 못 하는 게 없더란다. 후줄근한 몸빼에 무릎까지 오는 장화에는 진흙이 잔뜩 붙어있고, 이빨만 반짝이는 새카만 얼굴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데다 소금기로 얼룩덜룩하기까지 해서 누가 어머니고 누가 친구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단다. 마침 참 때였다. 그늘에 모여앉아 양푼에 썩썩 비빈 고추장밥을 퍼먹고 있는데, 저만치서 과대표였던 남자 동기가 나타났다. 여학생들은 반사적으로 숟가락질을 멈추고 서로의 몰골을 훑으며 당황했는데, D는 벌떡 일어나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더란다. 앉아서 같이 먹자면서. 과대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전해줄 책자가 있어 오랜만에 동기들 얼굴도 볼 겸 왔다고 했다. 과대표는 며칠 머물며 함께 일을 돕다 갔고, 방학 후 D에게 고백을 했다. 꾸밈없는 모습에 반했다고 털어놨고 둘은 과내 커플로 지내다 졸업 후 결혼했다.


이 이야기를 여태 기억하는 건 당시 유일하게 좋아했던 연애 이야기라서다. 나는 사랑 얘기가 재미없어서 친구들 다 좋아하는 하이틴 로맨스도 읽지 않았었다. 하니, 연애의 시작이나 사랑의 결말 따위가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딴 덴 관심 없고 그냥 D가 너무 부러웠다. 이후로 줄곧, 어떻게 하면 D처럼 될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나 솔직하고 당당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에만 몰두했다. 힘이 있어야 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먼저 힘부터 키우자, 그러면 믿음도 생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잘 되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행동이 바뀌고 태도가 결정된다면 세상에 고민할 게 뭘까. 여자애와 여학생을 한참 전에 지나왔는데도 나는 아직 아줌마가 되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나 뻔뻔하도록 당당한 진짜 ‘아줌마’ 말이다. 내 안의 여자애는 부끄러움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한다. 숨기 바쁜 여학생은 그런 나를 어떻게든 포장하고 싶어 애쓴다. 여자애는 여전히 척하는 게 질색이고, 외출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할 때마다 여학생은 스스로가 탐탁지 않다. 피부가 예민해서 화장이 불편하고 싫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나를 꾸미는 것 같고, 그럴듯한 가면을 연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언제 어디서나 맨얼굴에 편한 옷이 편한 것도 아니다. 겉옷만 걸치고 마트에 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무릎 나온 바지가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리 가깝대도 담엔 제대로 챙겨입고 나와야지, 후회한다.


또 떠오르는 게 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식당에 갔다. 다들 유니폼 모자를 벗는데 나만 벗지 않으니 한 동생이 답답하지 않냐고 묻는다. “답답하긴 한데 머리가 너무 눌려서...”, 했더니 웃음이 터졌다. 그게 뭐 어떻냐고, 동생이 덧붙인다. “언니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신경 써?”


모자를 오래 썼다 벗으면 머리가 눌려서 모습이 조금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도 아니고 밥 먹으러 갔을 뿐인데. 보는 사람은 똑같이 우스운 머리 모양을 한 동료들과 식당 직원들뿐이다. 설사 옆 테이블에 다른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뭐 어떻다는 거람, 일하고 온 게 무슨 잘못도 아닌데. 손을 머리에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대다가, “아직 아가씨라 그래, 우리 아줌마들은 그런 거 없어, 편한 게 최고야!” 다른 언니 말에 용기를 얻어, “그래, 밥 먹을 땐 편하게 먹어야지!” 그제야 나도 웃으며 모자를 벗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바람을 조금 수정했다. 가면이 나쁜 건 아니다. 사는 데는 연기도 필요하고, 당연하기도 하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람이니까. 솔직함과 당당함을 부르는 힘을 다르게 키우기로 했다. 기껍게 쓸 수 있는 가면을 만들기로 한 거다. 좋아하는 가면을 만들어 기쁘게 쓰고 나가야지. 가면의 이름은 진짜 ‘아줌마’로 할 테다.


*사진- 렘브란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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