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도서관 가다가 글쓰기

by 시린

우리 동네 아이들은 ㅎ여중와 ㅈ여중을 지나 ㅂ여고에서 만났다. 가난한 동네였다. 부유한 옆 동네 아이들은 사립 ㅅ여고에 들어갔다. 교실마다 에어컨도 있고 사물함도 우리처럼 신발장이 아니라 베벌리힐즈 아이들에 나오는 캐비닛형이라 했다.


학원은 멀리 떨어진 동네에나 있었고 다닐만큼 형편 좋은 아이들도 없었다. 우리는 주말에도 학교에 가서 숙제며 입시공부를 했다. 교문을 개방하지 않는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날엔 시립 도서관에 갔다. 사립 독서실은 꽤 비쌌다.


ㄱ도서관과 ㅊ도서관이 있었는데, 두 군데 다 버스를 두 번 타야 했다. ㄱ이 조금 더 가까웠지만 더 큰 ㅊ을 주로 갔다. 문 여는 시간 한 시간 전에 출발해도 자리가 없어 허탕을 치는 일이 잦았으니까. 열람실이 넓은 ㅊ이 좀 더 안전했다.


ㅈ동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삼거리여서 버스와 마을버스, 갈아타는 사람들이 엉켜 늘 북적댔다. 오랜만에 동창이나 성당 친구를 만나는 곳은 대개 이런 정류장이었다.


ㅁ이가 이제 버스를 갈아탄다며 집에 전화한 건 네 시 반이었고,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된 건 여섯 시였다. 한 시간 반 동안 ㅁ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음날 아침 TV에 여고생이 입시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죄라고 강조하던 신부님이 정성껏 장례미사를 올려주었다. 엄격하고 잘 웃지 않아서 아이들은 신부님을 무서워했다. 어떤 일에도 실수하거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던 분이, 우리 ㅁ이, 우리 ㅁ이라고 몇 번이나 잘못 불렀다. 성당에서는 세례명을 부르지만 ㅁ이는 같은 세례명이 몇 명이나 있어 이름으로 부를 때도 많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ㅊ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면 ㅈ동을 지나 ㄴ동이나 ㄱ동에서 갈아탔다. 그렇게 ㅈ정류장을 지웠다.


지우지 못했다. 그날 네 시 반, ㅁ이가 공중전화 박스에 있을 때, 우리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창으로 흘긋 내다본 정류장 모습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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