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같은 날의 욕 연습

도로 위에서 쓰다

by 시린

라디오는 클래식 채널에 고정되어 있고, 크게 듣는 편이다. 에어컨 바람은 싫어한다. 다행히 먼지가 심하지 않아 창을 열고 달렸다.


슈만의 피아노곡이 유난히 격정적이다 싶더니 사이렌이 건반소리를 삼켰다. 이차선에서 신호대기중이던 내 왼쪽 빈 자리로 앰뷸런스가 들어와 앞차에 코를 박고 섰다. 앞, 오른쪽, 후방을 빠르게 훑었다. 어디로 빠져주지? 그때 초록불이 들어왔고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앰뷸런스 앞에 있던 산타페가 빠르게 치고 나가며 내 앞의 소나타 앞으로 진입했고 소나타는 앰뷸런스가 출발한 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데, 내 뒤에 있던 벤츠가 차선을 바꾸며 앰뷸런스 뒤에 따라붙었다. 따라가는 보호자의 차..?..까지 생각했는데 다시 차선을 바꿔 소나타 앞으로 들어왔다! 저런 얌체 같은!


앰뷸런스 앞에 있었던 산타페의 앞에는 까만 차가 있었다. 산타페가 먼저 차선을 바꾼 후, 그 뒤로 들어가려던 까망이는 갑자기 나타난 벤츠에 놀랐는지 소나타와 내가 아주 느리게 가고 있는데도 좀처럼 끼어들지 못했다. 초보였던 건지.


앰뷸런스는 더 기다릴 수 없었는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귀로 사이렌이 멀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그새 우회전(!)해서 사라지는 벤츠의 뒤꽁무니에 한 번 더 눈을 흘겼다. 저런 얌체 같은!


별로다. 나는 시원하게 욕을 못한다. 쌍시옷이나 숫자와 자손들의 콜라보 같은 거. 배우려고도 해봤지만 입술과 혓바닥이 영 어색해서 늘지 않았다. 이렇게 욕이 필요한 순간마다 답답해 죽는다.


좀 더 큰 소리로 해봤다. 저런 얌생이 같은!

역시 약하다. 다시 외쳤다. 저런 빠가사리 같은!


빠가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만약 몹시 예쁜 물고기라면? 안되지, 못생기고 못된 물고기는 뭐가 있지? 아귀? 곰치? 메기? 투투? 걔는 개구리지..


욕 같은 말을 뒤져대다가 이번엔 내가 차선을 잘못 탔다. 좌회전했어야지! 나한테도 욕을 하고 싶었다. 이런 박태기 같은!


욕 같지도 않고 박태기한테 미안했다. 고만 하자..


어차피 돌아가야 할 길, 마침 나타난 휴게소에 들렀다. 그러고보니 배가 고팠다. 김밥집에 들어가니 세 사람이 밥을 먹고 있다. 주인인 듯한 한 명이 기다리라고 했다.


김밥을 싸야 하니 기다리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몇 숟갈 남은 밥그릇을 비운 후에야 일어났다. 포일에 싼 김밥을 받으려 내민 내 손을 내버려두고 친구들 반찬을 챙기러 테이블로 돌아갔다 왔다. 몇 주 사이에 김밥값이 올라 있었다.


차로 돌아오니 아까 듣던 <신세계로부터>가 아직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지 않았으니 괜찮은 걸로 하자. 아주 오래 걸린 건 아니야, 타이밍이 나빴을 뿐. 합리화의 말을 찾다 차를 돌리지 않고 오일륙 도로에 접어들어버렸다. 이런 쌈장!


..됐어, 인쇄소 들르는 게 급한 건 아니니까. 집에 가자. 피곤하군. 배도 고프고.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차에서 김밥을 종종 먹는다. 밥 먹을 시간이나 장소가 마땅찮을 때. 운전하며 먹기엔 썰어 놓은 김밥이 제일이다. 포일의 한쪽만 벗겨 꽁다리를 물고 씹었다. 짜다, 몹시. 이런 소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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