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만 불의 눈을 가진 사람

어린이의 기억을 쓰다

by 시린

며칠 전 갔던 카페에서 오랜만에 어항을 봤다. 와, 어항 물고기 오랜만! ㅍ는 아예 유리에 코를 박았다. 관심 있게 몇 가지 묻자 사장이 후닥 바에서 나와 물고기들의 족보와 역사를 읊기 시작했다.


어항에 수백 마리가 바글대고 있었는데 구피대디는 얘가 첫째고요, 얘가 셋짼데요, 하며 다 똑같은 애들 중의 하나를 1초만에 짚어내는 신공을 몸소 보여주었다. 끼고 있는 게 특수안경인가 싶을 만큼 놀라운 눈이라 생각하며 나는, 물고기는 안 보고 자꾸 그의 얼굴만 봤다. 마스크 아래서 달아올라 있을 발간 볼을 본 듯했다. 화가 아닌 좋아하는 것에 볼을 붉히는 그 안의 어린아이가 반가웠다.


오늘이 어린이날이다. 1980년대의 어느 날, 어린이날은 사생대회와 백일장을 하는 날이었다. 교내 사생대회와 백일장을 거친 학교 대표 아이들이 공설운동장에 모여 대회를 했다.언니는 학교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백일장에 참가하러 갔다. 우리 식구들-동생을 업은 엄마와 아빠,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도 시내버스를 타고 언니를 응원하러 갔다.


난생 처음 간 (종합)운동장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놀라웠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땅바닥에 앉아 바닥이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스케치북과 원고지에 작품을 채워넣고 있었다. 스탠드에도 학생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인파가 바글거렸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고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선생과 부모, 우리처럼 아이를 응원하러 온 식구들이었다.


아침에 엄마는 제일 좋은 옷을 큰딸에게 입혔다. 직접 지은 작은 꽃무늬 원피스. 그런데 운동장 한가득 만발한 꽃들 속에서 작디작은 연분홍 꽃 하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언니를 못 찾으면 어떡해, 같이 자장면 먹으러 가야 하는데..싸갖고 온 사이다도 줘야 하는데..언니가 목이 마를까 봐 걱정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은 말 그대로 뙤약볕이었다. 천막이라도 좀 쳐주지 않고..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이를 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겁이 났다. 울상으로 얼굴이 발개진 나를 보고 아빠가 목마르면 사이다 따 줄까? 물었다. 도리도리. 좀 있으면 미지근해질 텐데-이 말은 더욱 서러워 울음이 막 터지려는데, 엄마가 아빠 어깨를 쳤다. 저깄네, 우리 딸!


엄마는 눈이 좋았다. 식구 중에 안경 한 번 안 써본 건 엄마 뿐이다. 하나 아무리 눈이 좋대도 운동장에서 꽃 하나를 찾아내는 건 기적이었다. 엄마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한참 헤매던 아빠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맞네, 언니 저깄다, 저쪽으로 가자.


우리 엄마는 굉장한 사람이었어! 이번에는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인파를 헤치며 꽃 찾으러 가는 길, 아빠가 맨 가방 안에서 사이다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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