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타케 신스케, <도망치고, 찾고>
단단한 사람, 강한 사람,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고들 한다. 어려운 상황에 맞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 또한 그 ‘대단함’을 증명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겨진다.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 멈춰서는 것, 계속 속도를 붙이지 않는 행위,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게으름 그리고 무책임과 쉽사리 동일시된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도망치고, 찾고>(2021, 김영사)는 이런 일반적인 생각들에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래야 하지?
작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부터 다르게 설명한다. 내가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 어떤 사람일 때 나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정답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각기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 수많은 "다른" 사람 중에는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아닌,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상상할 줄 모르고, 그렇기에 너무도 쉽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다. 보통 누군가를 나쁘다고 설명하면 세상은 참 쉽고 납작해지기 마련이다. 나를 상처입힌 사람은 ‘언제나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행동이 그의 속성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순수하게 악하기만 할 수 없으니, 나에게는 왜곡된 고정관념이 생긴다. 그것은 넓은 생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거나, ‘모든 타인에게 적용할 만한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자신의 상처가 생겨나야만 했던 이유를 과도하게 묵직하지 않게 전달한다. 단순하게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이고, 그것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행위가 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다정한 나레이션을 선물한다.
만약 그런 사람에게
못된 짓을 당한다면
네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
일단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거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거지.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일도,
나쁜 일도 아냐.
네 다리는
‘위험한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있으니까.
- 도망치고, 찾고 중에서.
“다리는 도망치기 위해 존재한다”. 무언가에 맞서서 버티고 서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픔으로부터 멀어지고, 또 자신을 도와줄 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작가는 그 대상마저 분명하게 지정하지 않는다. 너에게 상처를 입히는 대상은 가족, 연인, 친구뿐만 아니라 영화나 책 속,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순간뿐 아닌 한줄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연료 삼아 앞으로 나아가며, 이 연료 중에는 분명히 상처가 속한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힘 역시 내 삶을 추진하는 연료가 된다.
다만 언젠가는 분명히 자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사회생활 중에, 상상력 부족한 인간과 그들의 언행을 맞닥뜨릴 때면 더욱 그렇다. ‘나는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 맞나?’, ‘저 사람에 비해 스펙이 부족한 건 아닌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이렇게 힘든 건가?’, ‘더 생산적이어야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들이 곳곳에 떠다닌다.
그럴 때면 기억하자. 다리는 도망치기 위해 존재한다.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틈날 때마다 마구 다리를 움직여 당신에게 힘을 주는 것을 찾아보자. 마냥 편안하고 생각 없는 것 같아도 좋다. ‘의미 깊지 않아도’ 좋다. 회피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다리를 움직이고 있으며, 그 행동의 다른 이름은 회피가 아닌 ‘달리기’이다.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마음은 어디에든 도착하게 될 것이다. 출발선이든, 결승선이든, 바람 부는 언덕 위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