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내가 자라날 수 있을까. 이대로 뿌리 내리지도 뻗어 나가지도 못 한 체 썩어가는 건 아닐까. 내 우울이 나를 죽이지 않을까.
나무가 자라는 덴 흙과 물과 빛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행성엔 해가 뜨지 않으니 가진 건 젖은 흙과 탁한 물뿐이다. 이곳에 살아있는 나는 한 평생 바닥에 잠겨있을 이끼. 흙에 눌리고 물에 잠기며 가라앉는 존재. 뻗어봤자 한 뼘, 깊어져도 한 줌인 것. 생을 태워도 연기밖에 나지 않는.
그늘을 드리우는 잎과 곧고 단단한 줄기를 바란 적이 있다. 흙을 쥐고 물을 마셔 살아내기를. 그렇게 자라나기를.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그러니까 나는 진흙탕에 얹힌 이끼. 살아봤자, 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