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끼

by 잎차

내가 자라날 수 있을까. 이대로 뿌리 내리지도 뻗어 나가지도 못 한 체 썩어가는 건 아닐까. 내 우울이 나를 죽이지 않을까.

나무가 자라는 덴 흙과 물과 빛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행성엔 해가 뜨지 않으니 가진 건 젖은 흙과 탁한 물뿐이다. 이곳에 살아있는 나는 한 평생 바닥에 잠겨있을 이끼. 흙에 눌리고 물에 잠기며 가라앉는 존재. 뻗어봤자 한 뼘, 깊어져도 한 줌인 것. 생을 태워도 연기밖에 나지 않는.

그늘을 드리우는 잎과 곧고 단단한 줄기를 바란 적이 있다. 흙을 쥐고 물을 마셔 살아내기를. 그렇게 자라나기를.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그러니까 나는 진흙탕에 얹힌 이끼. 살아봤자, 이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