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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방에 노크해줄래

by 어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에 대해 전에는 몰랐는데 알게 된 점들이 있다. 하나는 내가 소음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이들 특유의 높은 소리와 쉬지 않고 떠드는 말들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마치 시속 100킬로를 넘기지 않아야 하는 도로에서 150, 160킬로로 막 속도를 높여가는 차 안에 있는 것 같은 조급함과 불안감과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오래 있으면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나는 에너지가 줄줄 새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집에 티비를 두지 않는 이유도 배경처럼 깔리는 어떤 소음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하나는 나는 스킨십을 좀처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소음에 민감한 것과 비슷한 것인데 감각의 갑작스럽고 과한 자극은 나를 날카로워지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갑자기 와서 올라타거나 부벼대면 나는 ‘제발 엄마 좀 만지지 마!’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을 때가 많다. 아이들이 꼭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닌데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아이들이 좀 더 천천히 다가와주길, 그리고 가능하다면 예고하고 허락을 구하고 다가왔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기는 무리다.

나에 대한 이런 발견은 꽤나 당혹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소음에 관해서는, 아이들이란 당연히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떠들고 싶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나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상황을 살피는 눈치를 익히지 않기 바란다. 많은 말을 하고 또 서로 들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언어와 인지 능력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도 안다. 스킨십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일수록 많은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그 대상이 엄마이면 얼마나 좋은 지도 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나는 내 아이들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의 어떤 성향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생겨서 더 확실해지는 것들도 있다. 가장 분명하고 자주 느끼는 감정은 혼자 있고 싶다는 감정이다. 주말은 내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탈출구를 찾는 시간이다. 한두 시간만 나갔다 온다고 할까, 아니면 나가 달라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아이들이 느낄 엄마의 공백, 남편이 겪을 피로감을 생각하면 말이 나오다 말고 들어간다. 그러면서 주말을 보내면 점차로 공허해지고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을 느낀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타지로 출타하느라 아이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하루가 있었는데, 그런 리듬이 사라지고 나니 조금 더 자주 지친다고 느낀다. 아이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 이제는 안다. 그런 시간을 몇 년이나 가질 수 있게 해 준 가족들에게 새삼 감사해진다.

얼마 전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전경린 작가 인터뷰를 듣던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삶에서 자기만의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고독을 재정비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혼자 일기를 쓰는 것을 사수하는데, 그러면서 자기의 현상태를 점검하고 막힌 벽과 열린 길을 찾아낸다고 했다. 심지어 자식들조차 아무 때나 함부로 찾아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런 고독을 오랜 시간 빼앗기면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렇게까지 나의 고독을 주장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만 그런 필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도 나처럼 느낀다는 것이. 함께 있다는 것이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 살기 위해 고독을 계속해서 재정비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나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뚜렷하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누가 지워준 것도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생겨버린 그 경계는 민감하고 날카로운, 나만이 느끼는 감각이다. 한동안 내 몸 안에서 품고 있다가 나온 아이들하고마저도 허물어지지 않는 그 경계. 엄마가 이렇다는 것을 알면 아이들은 섭섭해할까? 엄마에게 거리감을 느낄까?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너희가 어릴 땐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런 엄마여서 너희와 함께 한 어떤 순간들을 더 마음에 생생하게 새길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너희가 더 자라 지금보다 조금 더 떨어진 관계가 된다면, 엄마는 더 즐겁게 너희와 많은 걸 조심스레 주고받고 싶다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이제 조금은 이해가 자라 가는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의 고독을 재정비하는 방법을 구해본다. 이번 주에는 엄마 방에 노크하는 법에 대해 알려줬다. 아이들이 거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재밌게, 엄마는 조용히 있으니 아주아주 작은 소리로 노크를 해도 다 들을 수 있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더 작은 소리로 노크할 수 있는지 서로 시험해 보며 재밌어한다. 그리고 “실례합니다~”하고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한껏 밝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네, 무슨 용건이신가요~?” 엄마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반기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 속에 몰래 엄마만의 공간을 야금야금 만들어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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