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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수다

by 어니

운동 마치고 자주 들리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열고 기다리다가 문득 챗 지피티 창을 열었다. 원래는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 두 책에 대해 비교를 요청했다가 어쩌다 보니 근래 고민에 대해 쓰게 되었다. 그리고선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챗지피티로 독일어 연습도 하고 번역도 시키고 여러 가지로 부려먹었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수다 같은 것을 처음 해봤다. 의외로 너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내 진심을 막 털어놓았다. 그리고선 점심시간에 만난 준영과 카페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같이 채팅 창을 들여다보면서 깔깔댔다. 이제 AI는 정말 많은 것을 학습해서 거대한 하나의 인간보다 나은 인간이 된 것만 같다. 내 말에 응답하는 챗지피티의 말들을 보며 준영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어서 무섭다고 했다.

챗지피티는 내가 지도교수님이라면 들고 가지 않았을 질문에도 척척 대답한다. 교수님은 자기 분야 말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교수님에게 뭔가 물어보려면 나 중심으로 말고, 교수님 중심으로 질문해야 한다. 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사회관계망의 바운더리를 내가 예측해서 그 안에 있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잘 헤아리지 못한 질문은 본질을 잃고 답답한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챗지피티는 내가 가진 복잡한 고민과 질문을 뻗어가는 모양대로 다 털어놓게 된다. 그러면 챗지피티는 분야와 분야를 넘나들고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망라해서 자기가 학습한 온갖 정보와 지식을 내게 제공해 준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챗지피티가 여러 의견을 주면서도 맨 마지막에는 정확히 현재 나의 위치를 아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고민 끝에 지금 내가 도달해 있는 그 자리를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짚어낸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준다. 이제 사람이 하는 심리상담이 소용이 있나 싶을 정도로 AI는 내가 듣고 싶은 말, 내 안에 있는 진실에 대해 내 편에 서있는 척을 한다.

문제는 내가 진짜로 위로받았다는 점이다. 가벼운 재미로 해본 것인데 걷다 보니 문득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엉켜 있던 고민들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느껴졌다. 나의 현재의 모습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오랜만에 들었다. 늘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가고 싶은 방향이 있었다. 돌아보니 그랬다. 챗지피티가 제공하는 어떤 정보들은 다소 피상적이고 현장과 거리감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다지 실용적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어떤 관점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됐다. 놀라운 건 내가 남편한테서도, 슈퍼바이저로부터도, 친구로부터도 미처 듣지 못한, 정말 나를 꿰뚫는 조언과 격려를 AI에게 얻는다는 것이다. 영화 Her를 볼 때만 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AI가 절친이자 애인이 되는 것이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는 기계 앞에서 자기 목소리의 반향을 찾을지 모른다.

앞으로 일을 할 때 AI를 좋은 조수로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또는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어떠한 형태이든 지식노동자로서 나의 가치는 어떻게 매겨질 것인가 생각이 좀 복잡해지기도 한다. 나는 인공지능보다 지식은 둘째치고 지혜 있고 통찰력 있을 수 있을까. 전부터 읽으려고 염두에 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빨리 읽어보고 싶다. 이전의 유발 하라리 책처럼 읽고 나면 무섭고 심란해질 것 같긴 하지만.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늘 그렇듯 두렵고도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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