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몸은 항상 무겁다. 피로가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심지어는 텅 빈 것만 같았던 마음속까지 온몸 구석구석 달라붙어 있다. 눈에 보이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거라면 당장 풀어버리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루의 고단함은 집으로 가는 내내 풀리지 않고 떨어져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면 출근하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침의 흔적들과 환절기로 꺼내지도 들여놓지도 못한 옷더미들, 평소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쓸모없는 이쁜 쓰레기들이 눈에 가득 차 이차적으로 두통까지 유발한다.
나름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덜어내야 할 것들이 생기는 것으로 보아 아직 먼 듯하다. 덜어내고 나면 빈자리에 또 다른 무언가가 쌓여 있다. 쌓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덜어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다. 정말 이제는 덜어내고 싶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사람이든.
덜어내고 나면 한동안 속 시원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헛헛해졌다. 물건을 버리고 나면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것이 다시 자리를 차지했고, 과했던 마음을 덜어내고 나면 또다시 마음이 과해질 준비를 했다. 그렇게 다시 꽉 차고 나면, 여유 공간마저 사라지고 나면 정작 나 자신은 발 디딜 틈이 없어 구석으로 내몰렸다. 이렇듯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이제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버려야 할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모두 정리하자.
제일 먼저 옷장과 신발장부터 비우기 시작했다. 그나마 버릴 것에 정을 떼기가 쉬웠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 1년 동안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 밑창이 구멍 나기 직전인 신발, 불편해서 손이 잘 안 가는 구두들. 그리고 부엌, 거실, 침실 수납장 등 차례로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정리하고 버리고 나니 정말 나에게 필요한, 내가 애정하는 것들만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내가 좋아하는 취향,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알게 되었다. 물건들을 덜어내고 나니 몰랐던 나의 색깔을 발견했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부정적 마음이 가득 차면 고집과 편견이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면서 그 감정에 집착을 하게 된다.
덜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게 꽉 쥐고 있으니 새로운 마음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가슴이 늘 답답하고, 명치는 콕콕 쑤시며 작은 자극에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마음의 공간이 가득 차다 못해 터지기 직전 상태라고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집착을 덜어내면 포기할 용기가 생기고, 꽉 차 있던 부정적인 마음들이 흘러나가면서 여유가 생긴다. 요즘은 요가를 하면서 부정적인 마음들을 덜어내고 있는데,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쁜 감정들을 빨리 흘러 보내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인정과 수용으로 연결되려 하는 감정들을 매듭 지어 내보내면 된다.
물건정리, 마음정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 관계도 정리가 되었다. 굳이 잡고 있어야 하나 싶은 인연들을 떠나보냈고, 어차피 내가 놓으면 그만인 관계들이었다. 상대도 나도 서로에게 그 정도였던 모양이다. 인맥 관리랍시고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사실은 아주 무거운 짐이었다. 나 하나로도 벅찬 짐인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인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었다.
마음 정리를 하면서 집착을 덜어내니 자연스레 그들의 손을 놓게 되었다. 날 필요로 한다면 그대들이 와서 잡으시오. 나는 무거워서 못 잡고 있겠으니.
한바탕 대청소를 끝내고 나니 여유 공간이 생겼고, 당분간은 그대로 두려 한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그리고 비워진 공간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채워질 공간이지만 생각 없이 욱여넣기보다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씩 채워나가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물건들,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마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