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은? 바로 나! 그렇다. 화가 날 때, 울고 싶을 때, 절망적일 때 등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속풀이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남을 붙잡고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달라 부탁할 염치도, 용기도 없으므로 가장 만만한 나를 붙잡고 감정 찌꺼기들을 토해낸다.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할까.
얼마 전 아로마 향수를 만드는 공방에 방문한 적이 있다. 여러 향을 시향하고 좋아하는 향을 선택하는 단순한 체험인 줄 알았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심리 분석까지 합쳐진 지나고 보니 심리 상담이 주인 체험이었다. 최근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질문하며 카드를 3장 뽑으면 해당 카드들에 어울리는 향과 해결책이 제시된다. 그중 문제의 근본이 되는 카드가 있었는데 ‘긍정적’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자몽향 카드였다. 카드가 해결책이니 반대로 나의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특히 ‘자책’과 ‘짜증’이라는 부정적 감정 즉, 감정적 독소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내 탓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상황들이 사실은 해소가 되지 못하고 독소로 쌓여가고 있었다. 카드의 해석을 듣고 나니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동안 괜찮은 줄 알았다. 나름 마음의 평안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은 내 탓으로 돌리며 ‘네가 마음을 다 잡지 못해서 그런 거야’라며 채찍질을 하며 평안이라 우긴 것이었다.
자책을 하지 말라는 해결책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머리로는 알겠지만 습관이 무서운 게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무조건 자기 검열부터 들어간다. ‘내가 어디서 실수를 한 거지? 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그 순간에 좀만 참았더라면, 내가, 내가…’하며 나를 수렁 끝까지 끌고 간다. 지나고 보면 나의 잘못이 아닌 오히려 상대방이나 주변 환경, 상황이 잘못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내 잘못이 아니야!’라며 나를 변호하며 상대와, 상황과 맞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상황까지 가진 않겠지만 정말 속이 시원할까 아니면 타인에 대한 죄책감이 더 쌓여갈까. 태생적으로 경쟁과 싸움을 싫어하는 인간이 상황을 해결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오히려 대면하여 싸우는 상황이 더 스트레스가 되므로 최대한 마찰을 피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데 최선을 다 한다.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내가 그를 탓하면 그가 상처를 입을까 싶은 이상한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계속 신경이 쓰인다.
차라리 내 탓을 해버리면, 어차피 그 방법이 제일 익숙하므로. 그 결과 내 탓하는 것이 제일 속 편한 해결책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카드 3장 중 한 장이 자책을 하지 말라는 카드였다면 나머지 두 장들은 이와 연결되는 키워드였다. 하나는 ‘순응함’의 팔마로사향, 또 다른 하나는 ‘자기표현’의 바질향. 변화를 받아들이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익숙한 해결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전히 사람이 힘들고, 싫은 사람과는 말조차 섞기 싫은 상황들이 많다. 그럼에도 자책으로 인해 쌓인 독소가 나를 잠식하기 전에 싸워야 할 상황에서는 싸울 용기를 내야 하고 그럼에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내 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자꾸 나를 향해 회초리를 들려할 것이다. 그 회초리에 움찔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자. 정말 불쌍하지 않은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혼나야 하는 내가 말이다. 이기적이더라도, 아니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잘못은 상대가 한 것이지 내가 아니다.
당당하게 ‘내 탓이 아니야’라며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떳떳하게 오히려 잘했다며 칭찬해 줄 수 있는 뻔뻔함을 키워야 한다. 바질처럼 자신의 향을 뿜어내며 나의 무고함을 표현해야 한다. ‘어랏. 이 주인 놈이 웬일로 안 혼내네?’하고 갸우뚱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나를 위해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