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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Oct 01. 2024

숨은 티끌 찾기 대회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던 20대는 지나가고 건조하다 못해 바스러져 가는 인류애를 겨우 붙잡고 있는 30대를 지내고 있다. 조각난 인류애를 가진 탓도 있지만 타인을 스캔하는데 쓸 에너지마저 조각만큼 적어져 최대 효율로 빠르게 스캔을 끝마쳐야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에너지를 써도 될 만한 사람인지.

모든 사람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장점은 있다. 다른 이가 보았을 때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눈에 쌍심지를 켜서 단점만 찾아다니는 열정을 키우게 된다. 여기저기 숨은 티끌들을 찾아내며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를 더 늘린다. 그렇게 상대를 단점만 가득 찬 내 인생의 빌런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그는 내가 무찔러야 하는 악당이다.

내 인생에서 그만 꺼져줘야겠어. 퍽.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우주 밖으로 날려버린다. 내 우주에서 그만 꺼져!
(이미지 출처-pinterest)

티끌 찾기 레이더가 미워하는 대상에서만 적용이 되면 좋으련만 이제는 무분별하게 만나는 모든 이에게 적용이 된다. 고장 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고장 난 사실을 인정하자니 레이더의 전신인 내가 고장이 났다는 얘기가 되니 쉽게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a/s를 무기한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제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장에서는 항시 레이더가 켜져 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직장에서는 자기 방어 목적에서 레이더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플러스 진상 감지 레이더도 같이 활동을 하므로 좀 더 디테일하게 상대를 스캔할 수 있다. 진상 감지 레이더에서 경고음을 보내면 그 순간부터 선을 긋고 다가가지 않는다. 실제로 직장에서는 블랙리스트라고 하기는 그렇고 근무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진상들에 대한 메모를 해두는 편이다. 진상 감지 레이더가 경고음을 울릴 때 컴퓨터 화면을 슬쩍 보면 역시.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확신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 보니 레이더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직장에서는 자기 방어 목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이더를 돌리지만 직장 밖 사생활에서는? 사생활에서도 이 레이더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사생활에서도 자기 방어 목적으로 돌리다 보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다. 방어만 하다가 나만의 성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보기에 나의 모습은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 고집 있는 사람,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티끌을 찾아냈을 때 묘한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발견했던 그 순간 나 자신이 소름 끼치게 끔찍했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찾기 시작한 티끌이 눈에 밣혀 또 다른 티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보물 찾기라도 하는 듯 혈안이 되어 상대의 티끌들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그 끝은 ‘거봐.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딨어. 시간 아까우니까 여기까지만 하자’하고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다. 더 이상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상대를 떠올리면 그제야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티끌은 말 그대로 티끌이다. 참 가벼운 무게다. 티끌이 걷히고 나면 무게감 있게 자리 잡고 있던 장점이 드러난다. 티끌들이 가리고 있던 그 사람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이었던가. 이렇게나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구나’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식으로 떠나보낸 인연이 많다는 사실이 슬펐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떠나보낸 길을 다시 걸어가며 바닥에 놓인 많은 티끌들을 쓸어내니 미련이 다시 차올랐다. 나의 우주 밖으로 차버린 인연들, 저 우주 밖에서 빛나고 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이 망할 레이더, 이젠 고쳐야 할 때가 왔네.

20대처럼 마냥 순수하게 빛에 이끌려 마음을 다 내줄 수는 없지만 긍정 회로를 돌리며 상대의 빛을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티끌 레이더가 자꾸만 올라오려 한다면 그 사람의 빛나는 곳에 집중하면 된다(그럼에도 올라온다면 그건 조심하라는 것이다).

상대도 나의 빛을 찾아낼 수 있도록, 티끌을 다 가릴 정도의 빛을 내며 그 순간만큼은 ‘티끌 찾기 대회’가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찾기 대회’이다.
(이미지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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