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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Oct 22. 2024

한숨 교향곡

사람을 만날 기운조차 없어, 전화로 떠들 기운조차 없어 그저 노래의 위로로 버티던 때가 있었다. 눈물로라도 터뜨려야 할 것 같아서 작정하고 울 생각으로 위로곡 플레이리시트를 재생시켰다. 그중 매번 도입부부터 터지는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이하이의 ‘한숨’이었다. ‘하아’ 한숨을 내뱉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남들 눈에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가사 말 그대로 한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힘든 하루를 보내고 겨우 퇴근길 버스에 몸을 맡기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으로는 부족해서 눈물까지 쏟고 나니 조금이나마 살 것 같았다.

사람의 호흡은 들숨과 날숨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며 반복이 된다. 그러나 긴장, 불안 상태가 지속되면 들숨의 비율이 높아진다. 숨을 내쉬는 것보다 들이마시기만 하면 몸은 더욱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 한숨을 내쉬는 것은 그동안 못 내보냈던 숨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몸의 노력이 나의 정신을 다시 되돌려 놓는다. 토닥토닥. 진정해. 이제 한숨 좀 돌리자.

나 역시도 들이마시고 있다는 것만 자각하고 내쉬는 숨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행해지고 있는 것이 호흡이기에 ‘내 몸이 알아서 잘 내뱉고 있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호흡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요가에서는 동작을 행할 때, 즉 아사나에 호흡을 함께 담는다. 들숨과 날숨이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며 그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날숨은 들숨보다 항상 짧았다. 들이마신 만큼 다 내뱉지를 못 하고 그 위로 들숨만 쌓아갔다.

빨리 아사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잘 되지 않는 속상한 마음에, 옆 사람과 비교하는 열등감이 내쉬는 법을 잊게 만들었다.

요가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았다. 직업상 타인의 한숨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한숨을 쉬는 것만 봐도 발작 버튼처럼 몸이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마치 그들의 한숨이 나의 내뱉는 숨길을 막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직장 내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로 일을 했다. 자동문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오던 숨이 ‘헙’하고 다시 들어가고, 타인의 터져 나오는 하소연을 집중해서 듣기 위해 계속 각성 상태가 되어야 했다. 나의 한숨이 그들의 숨길을 막게 할까 싶어 참고 또 참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어떤 날은 두통이 심했고, 어떤 날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했다.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을 때는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

쓰고 있던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크게 한숨 들이마시고 그제야 마음껏 숨을 내뱉었다.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개운해지면서 ‘아~살 것 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숨을 쉬었다. 특히 한숨을 크게 내쉴 때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해지는 순간이 전쟁터 같던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너무나 달콤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다시 싸울 전투력이 차올랐다. 내렸던 마스크를 다시 올리고 나올 때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들어갔다. 한숨의 위력은 대단해!

나도 살기 위해 한숨을 내쉬는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남들 눈에는 힘 빠지는 한숨이겠지만,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겨우 뱉어내는 숨임을 알기에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하게 된다. 그 핑계로 나도 한숨 한 번 크게 내쉬고 먼지 털어내듯 마음도 탈탈 털어낸다.

힘듦의 총량법칙은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니 다시 쌓일 힘듦을 위해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보자. 사람들을 한데 모아 한숨 쉬기 타임을 가지면 어떨까. 매번 나오는 한숨들을 모으면 교향곡 하나는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한숨에 담긴 힘듦의 무게와 깊이가 다르니 악보의 화음처럼 한숨들을 쌓아 조합해 보면 묵직한 한숨 교향곡이 나오지 않을까.

그럼 각자의 자리에서 한숨 내쉴 준비를 하고, 한숨 교향곡 연주 한 번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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