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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Oct 29. 2024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대로 서울로만 가면 모든 일이 해결될 듯 막연한 희망과 현실 도피 목적을 가지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내향인이자 집순이에게 집은 충전소와 같은 곳이므로 직장을 구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집을 계약했다. 집 주변에는 적당히 혼자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식당이 있고 사람이 너무 붐비지 않는, 적당히 사람 냄새나면서 서울의 느낌도 나는 망원동을 시작으로 벌써 6년 차 마포구 주민이 되었다.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이지만 그럼에도 서울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의 면적은 내가 살던 제주보다 훨씬 좁지만 인구는 제주의 100배가 되고 하늘 가까이 솟은 빌딩 숲이 그 좁은 곳에 밀집되어 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촘촘함이지만 그 안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제주에서 지낼 때는 답답했던 마음을 비우고자 숲을 찾곤 했다. 촘촘한 나무 숲 사이에 서서 무거웠던 마음을 비워내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다시 채워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채우려는 그 무언가가 충족되지가 않아 늘 의문이 들었다. 무엇이 필요한 걸까. 제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언가일까.
(이미지출처-pinterest)

반대로 서울은 넘쳐났다. 사람도, 건물도, 기회도, 경험도. 궁금증이나 의문이 생기면 시도해 볼 선택지가 많았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좌절할 틈 없이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채워지지 않던 공간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처럼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서울의 제일 중심지인 중구로 나온다. 시청역에서 내려 2호선 라인을 따라 을지로입구역에서 을지로 3가 역, 종로3가역을 따라 높게 솟은 빌딩 숲에 둘러 쌓여 걷는다. 건물 구경, 사람 구경을 하며 걷다 살짝 기가 빨릴 때쯤 하늘을 찾아 고개를 돌리면 남산 타워가 선물처럼 뿅 하고 나타난다. 순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태원 클라쓰 메인 ost인 ‘시작’의 도입부가 고막에서 자동 재생되면서 에너지가 차오른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 모든 걸 이겨낼 것처럼’. 빌딩 숲의 기운을 한껏 빨아들이며 작심삼일 할 의지를 충전한다.

막 망리단길이 떠오르던 때에 우연히 망원동에 살게 되어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첫 서울살이의 터를 핫플레이스에 잡고 전입 신고까지 마쳐 정식으로 서울 시민이 되어 한껏 어깨가 올라갔다. 본투비는 아니지만 서울 입성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갔다. 드디어 섬을 벗어나 수도에 살게 되다니 대단한 걸! ’ 새로운 인연들과 사건들이 잔뜩 생기겠지 ‘하는 기대감도 차올랐다. 하지만 의외로 인간관계 쪽으로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 아주 심플해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곁에 남은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인류애가 워낙 극미량이었던 터라 소수에게만 쏟기로 했다. 서울에는 사람 외에도 재미난 것들이 너무 많으므로 쓸데없이 기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

물론 서울살이가 지칠 때도 있었다. 전세금을 못 받을 뻔하기도 하고, 작정하고 돈을 뜯어내겠다는 인간에게 값비싼 인생 수업료를 지불하기도 했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지 못해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파트타임으로 전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경험으로 쌓여 호락호락하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했고 누군가에게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부러움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나 역시도 내면이 채워짐을, 올라간 자존감을, 더 성장하고픈 욕심을 발견하고는 감탄할 때가 있다. 가끔씩은 ‘뭘 해도 잘 해낼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쏫아오를 때도 있다. 그 밑바탕에는 믿음이 쌓여있기 때문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깨달았다.

나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어색하지만 본 적도 없는 신을 찾기보다는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너 인마. 할 수 있잖아. 지금 일어나면 할 수 있잖아’하며 엉덩이를 툭툭 치며 일으켜 세운다.

(이미지출처-pinterest)

서울의 상징인 한강은 도보 10분 거리에 있고, 남산 타워는 생각보다 자주 눈에 띄며,  티켓팅만 성공한다면 숙소 잡을 필요 없이 지하철로 충분히 콘서트에 다녀올 수 있으며, 인스타 유명 카페와 맛집을 지척에 두고 있는 핫플레이스에 살고 있고, 마음과 눈이 시끄러울 때에는 고궁 투어로 잠시 동안의 고요함을 얻기도 하며 등등 돌아다녀야 할 곳과 해볼 경험들이 너무 많음에 아직은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셀 수 없이 많다. ‘엄마. 2년만 서울에서 살고 돌아올게!’라며 엄마와 약속을 했지만 ‘엄마. 나 여기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내려오라 그래!’라며 되려 큰소리치는 불효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마약 같은 도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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