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35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했다. 35년이면 내가 살아온 시간에 4년을 더한 기간이다. 갓난아이가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는 긴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자신의 일을 했다는 의미이다. 띄엄띄엄 직장인 생활을 해온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이다. 아빠의 인생 2막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서울에서 모였다. 평소엔 도리만 겨우 지키는 싱거운 큰딸이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담아 모임 장소를 홍은동에 있는 '스위스 그랜드 호텔'로 정했다.
자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진 않아도 호텔에 묵는 걸 좋아한다. 낯설지만 편안한 침구와 아늑하고 정돈된 조명이 있는 호텔방에서 자고 일어나면 인생에 기름칠을 하는 것 같다. 뻑뻑한 일상이 조금은 빛이 나고 유연해진달까. 독립을 한 후에는 줄곧 욕조가 없는 집에 살았기 때문에 가끔은 거품목욕을 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했다. 잘 갖춰진 어메니티로 몸을 씻고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 날 조식을 기대하는 호텔에서의 밤을 사랑한다. 월세를 60만 원씩 내며 서울에 살고 있는 지금은 잠깐 포기한 기쁨이다. 아빠의 퇴직 핑계를 대고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캉스이기도 하다. 내 취향은 으리으리한 호텔이 아닌 기품 있게 잘 늙은 호텔이다. 대리석보단 카펫이 깔린 라운지를 선호한다. 오래된 호텔의 직원들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의 직원들과는 '짬밥'도 다르다. 호텔을 많이 다닌 건 아니어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경험이 많은 직원은 레고 인형처럼 각진 몸짓으로 서비스를 베푸는데 레고 인형처럼 친근하기도 하다. 완벽하게 정제된 뻣뻣한 친절보다 한수 위이다. 공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태도가 대접받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스위스 그랜드 호텔도 그랬다. 그래도 5성급 호텔인데 '나 호텔이오' 하는 위압감 없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 큰 건물도 없어 고즈넉하고 옆에는 홍제천이 있는 풍경도 딱이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여러 명이 머물 수 있는 레지던스라 본관과는 떨어져 있어 체크인을 어디서 해야 하는 건지 조금 헤맸다. 다행히 숙소 일층에 영화 '귀여운 여인' 속 호텔리어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인상의 직원이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연식이 꽤 있어 걱정했는데 부모님도 흐뭇해 보였다. 내부는 90년대 한국의 부잣집 아파트와 미국의 가정집을 합친 독특한 분위기였다. 침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그것이 분명한데 거실은 골프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오묘한 콜라보였다. 아빠는 그 시절 거머쥐지 못한 부를 만끽하려고 그러는지 우리집인척 상황극을 했다. 처음엔 아빠를 비웃다가 나중엔 가족 구성원이 이 상황극에 꽤나 진심이 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공간인 냥 부엌에서 컵을 씻었고 나는 뒤늦게 합류한 동생에게 '왜 이렇게 집에 늦게 왔냐'며 면박을 주었다. 동생은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즐거웠다.
식사를 하는 내내 눈치를 보다 어물쩍 선물을 꺼냈다. 동생과 모은 빳빳한 현금을 담은 봉투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어깨띠였다. 어색해하며 사진을 찍고 케이크를 잘랐다. 부모님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시키는 건 다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무뚝뚝한 딸이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살가운 말도 잘 붙이지 못한다. 아빠를 닮은 딸인데 그럼 어쩌랴. 이벤트를 할 수 없는 유전자가 박혔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와 엄마에게 어깨띠를 메주는 순간 어린 날의 추억이 스쳤다. 동생과 나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항상 방문을 닫고 모의를 했다. 기억난다. 빨간색이 들어간 옷을 찾아 옷장을 다 헤집어 놓은 열 살 무렵의 나와 미취학 아동이었던 동생. 내가 언니라고 빨간색 목폴라에 빨간색 치마, 빨간색 스타킹을 모조리 차지했고 동생은 빨간색 털모자만 썼다. 투정 부리는 동생에게 체크무늬 치마를 입혀서 달래 놓고 둘이 캐럴을 연습했다. 데뷔(?)해도 좋다는 실력검증이 끝나면 거실에서 첫 무대를 치렀다. 우리는 열성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췄다. 유일한 관객은 부모님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빨간색에게 잡아먹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다. 어떻게 그렇게 깜찍한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그랬던 아이가 내 몸에 아빠의 피가 흐르는 게 싫다고 울분을 토하고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아빠는 한 회사에 몸담고 있었다니. 그게 제일 놀라운 일이다.
아빠는 술을 조금 마시고 취해 눈이 풀려버렸다. 엄마와 나, 동생은 본관의 고풍스러운 카페에 가보자고 신이 났고 아빠는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따라왔다. 여자 셋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동안 아빠는 풀린 눈으로 앉아 있었다. 예전엔 아빠의 술 취한 눈이 무서웠다. 훅 끼치는 술냄새도 맡기 싫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와 눈 마주치기도 싫었다. 언제 버럭 할지 모르는 성질이 술을 먹으면 더 잦아져서 두려웠다. 아빠는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진 않는다. 그런데 그게 서운할 때가 있다. 참 모를 일이다. 아빠의 생일에 '아빠가 마신 소주만큼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새긴 케이크를 선물한 적이 있다. 아빠는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 거냐며 눈을 구기며 웃었다.
방이 네 개나 있어서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씻고 나오니 아빠는 러닝셔츠에 팬티만 입고 불도 안 끄고 자고 있었다. 어렸을 적 아빠는 언제나 안방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집 책장엔 공지영의 '착한 여자'가 꽂혀 있었는데 어린 내가 읽으면 안 되는 장면들도 있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와 호텔에 갔는데 샤워를 하고 스타킹까지 신고 나오는 장면이었다. 다 씻었는데 스타킹까지 신고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였는데도 그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 이해가 되는 게 이상했다. 아빠는 그런 거 읽지 말라고 날 혼내지 않았다. 불을 끄고 문고리를 힘주어 잡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아빠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았다.
스위스 그랜드 호텔은 1988년 개관했다. 37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34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던 위세가 당당했던 호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못내 아쉽다. 계속 남아줬으면 좋으련만 숙박객을 받기엔 너무 늙어버렸나 보다. 한 번은 아빠와 도자기를 만들러 간 적이 있다. 사람들이 도자기를 빚는 아빠의 실력을 보고는 예술가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아니라고, 아버지는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우면서 씁쓸했다. 아빠는 이제 공무원이 아니다. 아빠는 도예가도 될 수 있고 탐험가도 될 수 있고 시인도 될 수 있다. 호텔이 없어지는 건 서운해도 아빠의 허물어진 빈터엔 가장이 아닌 한 남자의 새로운 꿈이 세워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