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덤, 결단의 유산

by 김작가a

무덤 앞에서

나는 그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바람은 조용했고, 나무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김재규. 아버지와 함께 시대를 살았던 사람. 말없이 결단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그와 아버지를 한 무덤에 모시려는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외침이었다.

아버지는 늘 말보다 윤리를 강조했다. 김재규는 말보다 결단을 실천했다. 그들의 삶은 다르지만, 그들의 고뇌는 같았다. 그들의 침묵은 시대를 향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침묵을 하나로 묶어야 할 시간이었다.

장남의 결심

나는 장남이다. 아버지 장준하의 이름을 지키는 사람. 그러나 그 이름은 단지 가족의 유산이 아니라, 시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는 독재에 맞섰고, 침묵 속에서 저항했다. 그리고 김재규는 그 침묵을 결단으로 바꾸었다.

“김재규 선생의 유족과 만나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움직였다.

그 만남은 조용했다. 말보다 눈빛이 많았고, 설명보다 침묵이 깊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대의 고통을 함께 껴안았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김재규 선생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장준하 선생을 존경했습니다.”

그 말은 단지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한 윤리적 유산이었다.

합장의 의미

합장. 그것은 단지 무덤을 함께 쓰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윤리를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침묵과 결단, 붓과 총, 유교적 윤리와 민주화 정신이 교차하는 자리. 그 무덤은 단지 흙이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었다.

“두 분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고, 유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김재규는 여전히 논쟁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정치적 인물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의 총성은 단지 권력을 겨눈 것이 아니라, 시대의 침묵을 깨우는 외침이었다.

준비의 시간

합장을 위한 준비는 조용히 진행되었다. 언론에 알리지 않았고, 정치적 해석을 피했다. 우리는 단지 두 사람의 유산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들의 침묵을, 그들의 결단을, 그들의 고통을.

나는 아버지의 유고를 다시 꺼냈다. 그 안에는 붓글씨 한 장이 있었다. “義” 김재규 선생이 남긴 글씨였다. 그 글자는 아버지의 삶을 관통했고, 김재규의 결단을 상징했다.

“이 글자를 무덤 앞에 새깁시다.” 나는 그렇게 제안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 글자는 단지 한자의 조합이 아니라, 시대의 윤리적 선언이었다.

침묵의 대화

합장을 앞두고, 나는 김재규 선생의 아들을 다시 만났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위로였다. 우리는 함께 무덤을 둘러보았고, 함께 붓글씨를 펼쳤다.

“아버지는 늘 ‘仁’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는 ‘忠’을 아끼셨습니다.” 그 말은 단지 단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버지를 기억했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시대를 되새겼다.

무덤의 완성

합장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몇몇 지인들만 참석했고, 언론은 없었다. 우리는 단지 두 사람의 삶을 기리고자 했다. 그 무덤 앞에는 네 글자가 새겨졌다. “義”, “仁”, “忠”, “誠”

그 글자는 두 사람의 삶을 요약했고, 시대의 윤리를 상징했다. 나는 무덤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바람은 조용했고, 나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고요한 외침이었다.

“이제, 두 분은 함께 계십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고, 눈물이 흘렀다.

유산의 길

합장 이후, 나는 그 무덤을 자주 찾았다. 그곳은 단지 묘지가 아니라, 윤리의 성소였다. 나는 그 앞에서 글을 썼고, 그 글은 시대를 향한 응답이었다.

“말보다 행동을, 행동보다 윤리를.” 그것은 아버지의 유산이었고, 김재규의 결단이었다.

나는 그 글을 책으로 엮었고, 그 책은 조용히 출간되었다. 사람들은 놀랐고, 일부는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시대를 관통했고, 그들의 결단은 역사를 바꾸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합장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 무덤 앞에서 새로운 윤리를 배웠고, 새로운 결단을 다짐했다. 그 침묵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 침묵을 이어받을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 무덤이 답했다.

“말보다 행동을, 행동보다 윤리를.” 그것이 그들의 유산이고, 우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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