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은 미완의 대업으로

by 김작가a

의(義)의 무덤: 함께 묻히지 못한 사람들

파주의 바람

경기도 파주. 그곳은 아버지 장준하가 묻힌 자리였다. 묘역은 단정했고, 바람은 조용했다. 나(호권)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장남으로서, 유산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러나 그날, 나는 아버지의 무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김재규. 그는 아버지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다른 방식으로 저항했다. 아버지는 붓을 들었고, 그는 총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뇌는 같았다. 그들의 침묵은 시대를 향한 외침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두 분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외침이었다.

비석의 총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삼성공원묘역. 김재규의 묘는 공원묘지의 가장자리,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그의 비석에는 총탄 자국 여섯 개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단지 돌에 남은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가 남긴 상처였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총을 들었다. 그 총성은 독재를 겨눴고, 침묵을 깨웠다. 그러나 그는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재심은 없었고, 재평가는 미뤄졌다. 그의 무덤은 말이 없었고, 비석은 피를 기억했다.

장남의 결심

나는 장남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는 사람. 그러나 그 이름은 단지 가족의 유산이 아니라, 시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는 독재에 맞섰고, 침묵 속에서 저항했다. 그리고 김재규는 그 침묵을 결단으로 바꾸었다.

나는 김재규 선생의 유족을 찾아갔다. 그들은 조용했다. 말보다 눈빛이 많았고, 설명보다 침묵이 깊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대의 고통을 함께 껴안았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김재규 선생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장준하 선생을 존경했습니다.”

그 말은 단지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한 윤리적 유산이었다.

4. 연좌의 그림자

그의 유족들은 전두환이 만든 연좌제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반역자의 가족. 그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고, 차별은 일상이었다. 취업에서, 교육에서, 사회적 시선에서. 그들은 침묵했고, 사회는 외면했다.

“아버지는 반역자가 아닙니다.” 그 말은 절규였고, 선언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버지의 유고를 떠올렸다. 그 안에는 붓글씨 한 장이 있었다. “義” 김재규 선생이 남긴 글씨였다. 그 글자는 아버지의 삶을 관통했고, 김재규의 결단을 상징했다.

5. 합장을 꿈꾸다

합장. 그것은 단지 무덤을 함께 쓰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윤리를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침묵과 결단, 붓과 총, 유교적 윤리와 민주화 정신이 교차하는 자리. 그 무덤은 단지 흙이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었다.

나는 제안했다. “두 분을 함께 묻읍시다. 그들의 침묵을 하나로 꿰맵시다.”

유족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하지 않았다. 합장은 논쟁이 되었고,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재규는 반역자다.” “장준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나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고통이었다.

6. 무산된 합장

합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논란은 커졌고, 유족들은 상처를 입었다. 김재규의 아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파주의 묘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무덤 앞에 앉았다.

“아버지,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 말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고, 나무는 말이 없었다.

나는 김재규의 묘역을 다시 찾았다. 그곳은 여전히 언덕 위에 있었고, 비석은 총탄을 품고 있었다. 그 총탄은 시대의 침묵을 꿰매려 했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 꿰맴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7.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합장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 침묵을 이어받을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두 무덤이 답했다.

“말보다 행동을, 행동보다 윤리를.” 그것이 그들의 유산이고, 우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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