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라: 해설과 함께

by 김작가a

귀천(歸天)


비둘기 휘돌아 나는 늦겨울 서울역 광장(廣場)

바삐 오가는 승객(乘客) 틈 바구니에서

어릴 적 두고 온 아들 찾으려

역전 맴도는 노파(老婆)


수급비(受給費) 타는 날마다

노숙인(路宿人) 김 씨, 밥집 데려다 주고

행여 아들 놓칠 새라

꽃샘 추위 휘감는 역전화단(驛前花壇)

옆 계단(階段)에 곤한 몸 비스듬히 기대었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터덜터덜… 김 씨는 그 미를 흔들었다

비닐봉지 속 미지근한 붕어빵을 불쑥 내밀었다

그 미는 꿈꾸듯 요단강 건넜다


연고(緣故) 없는 그 미는

국립병원(國立病院) 차가운 영안실(靈安室)에 누웠다

서약(誓約)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다

한달음에 달려올 아들에게 짐 안되려 그랬을 것이다


엄마 품속 추억의 온기(溫氣) 더듬던 아들은

냉장고(冷藏庫) 잠든 임 미간(眉間)에 패인 주름진 흐느낌 들었다

삼일 후, 실험실(實驗室) 매스에게 한(恨) 설인 몸 내주셨다

히포크라테스는 명복(冥福)을 빌었다.


“귀천(歸天)”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 상실과 구원의 복잡한 정서를 담은 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 서울의 분주한 풍경 속에, 사회적 소외와 개인의 내면적 고뇌,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애절한 염원을 교차시킵니다.

주요 이미지와 상징

서울역 광장의 겨울 풍경과 노파의 외로운 행로

“비둘기 휘돌아 나는 늦겨울 서울역 광장 바삐 오가는 승객 틈 바구니에서 어릴 적 두고 온 아들 찾으려 역전 맴도는 노파”

이 첫 연은 서울역 광장의 차가운 겨울 풍경 속에서, 어릴 적에 두고 온 아들을 찾으려는 한 노파의 애절한 행보를 그립니다. 분주한 승객 속에서도 노파의 존재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수급비와 노숙인 김 씨의 일상

“수급비 타는 날마다 노숙인 김 씨, 밥집 데려다 주고 행여 아들 놓칠 새라 꽃샘 추위 휘감는 역전화단 옆 계단에 곤한 몸 비스듬히 기대었다”

이 연에서는 사회의 약자, 특히 수급비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녀와 노숙자 김 씨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를 밥집까지 데려다 주며 아들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잃어버린 가족과 미해결된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애절한 노력으로 읽힙니다. 차가운 역전화단과 옆 계단에 기대는 모습은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고된 현실을 절실하게 드러냅니다.

비닐봉지 속 붕어빵과 요단강

“두어 시간 지났을까? 터덜터덜… 김 씨는 그 미를 흔들었다 비닐봉지 속 미지근한 붕어빵을 불쑥 내밀었다 그 미는 꿈꾸듯 요단강 건넜다”

여기서는 노숙자 김 씨가 비닐봉지 속, 미지근한 붕어빵을 꺼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붕어빵이라는 소박한 음식이 “꿈꾸듯 요단강 건넜다”는 표현은, 요단강이 상징하는 삶과 죽음, 혹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는 전환을 암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음식물이 넘어서, 잃어버린 무언가—예를 들어, 잊혀진 온기, 잃어버린 가족의 기억—가 초월적 움직임을 타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국립병원의 영안실과 서약의 굴레

“연고 없는 그 미”-여기서 ‘미’는 앞서 언급된 붕어빵 또는 상징적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어떤 잔재적 가치-가국립병원 차가운 영안실에 누웠다 서약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다 한달음에 달려올 아들에게 짐 안되려 그랬을 것이다”

아들의 추억과 실험실 매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엄마 품속 추억의 온기 더듬던 아들은 냉장고 잠든 임 미간에 패인 주름진 흐느낌 들었다. 삼일 후, 실험실 매스에게 한 설인 몸 내주셨다 히포크라테스는 명복을 빌었다.”

마지막 연은 과거의 온기를 기억하던 아들이 이제 냉혹한 현실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냉장고에 잠든 임 미간에 패인 주름진 흐느낌”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혹은 잔혹한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새겨진 모습을 그립니다. 삼일 후, 아들이 “실험실 매스에게 한 설인 몸 내주셨다”는 표현은, 그가 어떤 형태의 실험대상처럼 소모되고 희생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히포크라테스—의학과 치유의 상징—가 “명복을 빌었다”는 구절은, 이 모든 비극과 상실이 마치 의료적인 무력감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원을 받는 운명처럼 느껴진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주제와 분위기

“귀천(歸天)”은 도시의 분주함과 냉혹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잃어버린 가족, 소외된 인생, 그리고 불완전한 구원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포착합니다.

상실과 그리움: 한때 함께하던 가족과 기억, 따뜻함이 사라지고 대신 사회의 무관심과 고독이 자리한 채, 인간은 붕어빵 같은 소박한 잔재를 통해서나마 잃어버린 온기를 찾으려 합니다.

극복할 수 없는 굴레와 서약: “서약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수 없다”는 구절은 가족 혹은 사회적으로 내려진 무거운 맹세와 의무가, 개인의 운명을 굳게 묶어두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요단강 건너는 이미지와 국가 병원, 그리고 결국 실험실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인간이 겪는 생사의 경계를 절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언급은 의료와 치유, 그러나 동시에 한계와 무력함을 상징하며, 이 모든 운명이 고해(苦海) 속으로 귀천하는 듯한 운명론적 결말을 암시합니다.

함께 나눌 질문들

잃어버린 가족과 기억: 이 시에서 노파와 아들, 그리고 김 씨의 모습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실과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가족이나 소중한 기억을 회상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도시 속 소외와 구원의 메타포: 서울역 광장과 차가운 영안실, 그리고 실험실 매스 같은 장면들이 보여주는 사회의 냉혹함과 인간의 비극을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그런 공간과 경험 속에서도 희망의 기미 또는 구원의 가능성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상징적 이미지의 충돌: 비닐봉지 속 붕어빵이 요단강을 건너는 이미지와, 히포크라테스가 명복을 비는 장면은 전통적 상징과 현대적 현실이 혼재된 강렬한 대비를 이룹니다. 이런 상징들이 여러분의 삶이나 사회적 경험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 느껴지는 감정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귀천(歸天)”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서, 현대 도시인의 고독, 소외, 그리고 생사의 경계에서 느끼는 인간 존재의 허무와 그리움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혹시 이 시를 읽으시며 마음 속 깊이 다가온 감정이나, 앞으로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같이 나눠보며 서로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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