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장 제목: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
감정 톤: 회복과 용기. 질문: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당신은 무엇을 쓰고 있었나요?” 추천곡: Keaton Henson – ‘You’ 부서질 듯한 목소리로 건네는 회복의 씨앗
J.S.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신의 침묵처럼 고요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존재의 숨결. 설명보다 음의 간격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곡
상처는 진화하고, 고통은 창조된다 — 나의 이야기
“나는 이 병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증명하듯 살아야 했다.” — 『조울증은 감기다』
1. 고통은 언제부터 설명이 아니라 ‘내 탓’이 되었을까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설명보다 오해와 조언을 더 많이 마주해야 했다. “생각을 바꿔봐요.” “운동해보면 나아져요.” “당신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예요.”
이 말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나의 리듬과 고통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 사실이 더 깊은 침묵을 만들었다.
『조울증은 감기다』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감기는 잠시 앓고 지나가듯, 이 마음의 기울기도 언젠간 지나간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다만 그 사이에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도록, 이 이야기를 써본다.”
2. 진화는 몸을 바꾸었고, 고통은 나를 길들였다
진화론의 언어로 말하자면, 나는 감정 조절에 취약한 유전적 리듬을 가진 인간일 수 있다. 창조론의 언어로 말하자면, 나는 ‘온전하지 않더라도 끝내 의미로 회복될 존재’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두 언어 사이에서 스스로를 증오하지 않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공존의 길』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은 돌봄을 요청하는 생존의 언어다.”
3. 회복은 완치가 아니라, 반복 속에 피어나는 관계다
처음 약을 끊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치의는 이렇게 말했다. “끊는 게 회복이 아닙니다. 약과 함께 살아가는 삶도 당신의 선택이 될 수 있어요.”
그 말이 좋았다. 내가 온전해져야만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존재로 옮겨지게 된 순간.
회복은 완벽한 감정 조절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도 돌아갈 수 있는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4. 창조란 내 이야기를 다시 쓰는 힘이다
나는 더 이상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고통은 누구에게 닿을 수 있을까.”
글을 쓰며 깨달았다. 고통은 창조의 재료가 된다. 그것이 쓰이는 순간, 그 상처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구조가 된다.
이 장에 어울리는 음악. Ryuichi Sakamoto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가슴 한복판을 조용히 관통하는 선율, 그 안에서 끝내 살아있다는 감각. 이 곡은 회복과 고통 사이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