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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May 08. 2021

세상을 삼킨 아이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텁텁한 흙먼지를 뚫어 낼 듯이 우렁찼다. 마을 사람들은 무너진 세상에서도 찾아온 새 생명을 크게 환영했다.


신께 감사를 드리며 태어난 아이에게 축복을 빌었다. 사람들은 자라날 아이가 지낼 마을을 다시 일으켜 보기로 뜻을 모았다. 가라앉은 건물을 수리하고,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새로 팠다. 황량한 땅에 나무와 꽃을 심었고, 가축과 농작물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고되고 끝이 없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이가 있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하늘과 바다가 아이의 미소에 담겨있었다. 그런 아이의 미소를 사람들은 지키고 싶었다. 아이는 많은 관심과 애정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와 함께 마을도 세상이 무너지기 전의 모습으로 조금씩 되돌아갔다. 새 터전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가 성장할수록 마을도 번창했다. 아이는 이제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마을을 산책 중이던 아이는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어미를 찾아주기 위해 강아지를 안아 올린 아이는 깜짝 놀랐다. 강아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강아지가 아이의 가슴으로 흡수가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이는 사라진 강아지보다 처음 느껴보는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더 무서웠다. 아이는 울음을 터렸다.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괜찮을 거라며 아이를 위로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모습도 사라졌다. 아이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닥친 상황에 어쩔 줄 몰랐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이의 몸 안으로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나무들과 꽃들, 소, 돼지, 닭 등 수많은 가축들, 멀리 달아나지 못한 사람들까지.... 아이의 몸이 점점 불어났다. 그에 따라 마을이 엉망진창 되어갔다. 몸집이 거의 집채만 해 지자 사람들은 외쳤다. 세상을 삼키는 괴물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을을 급하게 떠났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가 되었다. 아이는 처음 느껴보는 고독감과 외로움, 불안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마을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에 흐르고 있는 모든 물들이 아이에게 삼켜졌다. 우물 속에 남겨져있는 물부터 시작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강물과 바닷물이 아이의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아이의 몸은 이제 산더미 만해졌다. 세상에는 더 이상 한 방울의 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물이 없는 세상은 점점 메말라갔다. 뜨거운 태양이 아이가 딛고 있는 땅을 갈라지게 하였다. 어긋나기 시작하는 땅 사이로 떨어질까 봐 무서웠던 아이는 태양을 스스로 흡수해버렸다. 갈라지던 땅은 멈췄지만 낮이 사라졌다. 아이는 이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커져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밤마다 나타나는 달과 별을 누워서 바라보며 아름다웠던 마을을 떠올렸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어머니의 따스한 품, 타오르는 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렀던 노래와 맛있는 음식들.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 자신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삼키는 괴물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달과 별들 마저 삼켜버렸다.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결국 아이는 이 어둠마저 삼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온 어둠을 몸으로 빨아 들었다. 아이는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이는 꿈을 꾸었다. 누워있는 아이의 가슴이 반으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푸른빛의 둥근 것이 천천히 올라왔다. 아이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이가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담겨있었다. 아이는 세상을 삼킨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품어낸 아이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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