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파고 04화

1.3 진화

1장. 경계의 탄생

by 이채

_


종종 우리는 확정적인 정의를 위하여, 또 더 이상 생각하기 힘들어서 등의 여러 이유로 경계를 꿈꾼다. 허나 어떤 이유에서든, 그리 가정한 가상의 편의를 위한 경계는 매번 휘발되고 세계는 결코 멈추지 않는바. 경계는 잠시 붙들어 놓았다 믿어지는 운동의 가상적 자취에 불과하리라.


담장도, 국경도, 언어도, 제도도, 심지어 ‘나’라는 경계선조차, 마치 밀려왔다 다시 떠밀려가는 물살처럼, 잠시 찰나에만 가상적으로 자리할 뿐 아니겠나(가령,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는 늘 결코 아닐 테니). 때론 확장되고, 때론 침식당하고, 때론 붕괴하는 양으로, 끝끝내 모든 것은 휘발된다.


역사 속 무수한 제국들이 그어놓았다는 낡은 국경선들을 보라. 각각 자기 영토를 ‘영원하다’ 선언했다지만, 세월은 모든 선을 지우고야 만다. 하물며 근래에 겨우 발명된 국민 국가라는 개념 따위랴. 국경은 사라지고, 지도는 새로 그려진다. 찬란했던 언어도 마찬가지다. 한때 절대라 믿었던 말들은 세월과 함께 부식되었으며, 뜻은 변하고, 소리는 사라졌다. 그렇게 피상적인 자기 확신은 모조리 영영 헛소리가 될 양이다. 그저 남는 건 다만 ‘변화’ 그 자체에 관한 매 ‘정확성’의 ‘논리’ 뿐일 양이다.


언젠가 하나였을 세계는 그리 [더욱] ‘나뉘어’ 간다. 세포가 분열하듯, 세계 또한 끊임없이 갈라지고 섞이며, 낯선 흐름에 진입한다. 붙잡으려 애쓰는 모든 ‘형태’는, 결국 운동 속에 잠시 머물렀던 하나의 사소한 무늬에 불과했으리라.


그리하여, 이토록 변모하는 경계 위에서 불쑥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나인가? 또, 어디서부터가 세상인가? 하고. 물론, 이토록 ‘자아’에 ‘함몰’된 의문에조차 단 번에 스스로 답할 수야 없을 양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무수한 의문에 스스로 답변을 써내려 구성해가는 자체가 삶까지도 구성하고 있지 않겠는지. 매 오늘 긋는 선이 내일은 다시 희미해지고 또 모레는 지워지겠으나, 그럼에도 그 위를 걸어 나아갈 수는 있겠으므로.


어쩌면 경계란, 매번 다시 숨 쉬고 몸을 뒤트는, 그리 때마다 다시 움트는 운동의 일그러진 선율일는지. 그리하여 그 모든 운동의 일시적 파편인 경계(존재)는, 마치 모래사장을 지나치는 발걸음처럼 언제 흔적도 없이 휘발될지 알 수 없는 무엇이리라.


언젠가 모든 ‘조화’로서 잉태된 출발지였을 ‘배아’는, 누구의 눈에도 발견될 수 없는 아득한 시간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으며, 이제 그 누구도 ‘분열’을 매개로 하는 ‘진화’만을 그저 꿈 꿀 수 있을 따름 아니겠나. 도무지 그 누가 제아무리 ‘배아’나 ‘조화’라는 가상의 ‘시원’을 꿈꾼다손 자기 암시 속에서 주장하더라도, 그는 그와 같은 단어로 이루어진, 실은 ‘분열’과 ‘진화’만을 오직 꿈꾸고 있으며, 그 누구도 영영 바로 그러할 수밖에 없었고, 없고, 또 없을 따름이겠다.

_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