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감정, 표류하는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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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감응은, 흔히 지나치듯 그리 단순히 한순간으로 그친다 간주할 수야 없으리라. 지나가면서라도 기어이 흔적을 남기고, 애초 그 자체 등장부터조차 ‘무엇’으로부터의 흔적인바. 마치 오래전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던 소리가 여즉 미세하게 떨려 울리는 양, 우리 안에 오래도록 진동하는 무엇이리라.
어릴 적 들었다던 말 한마디, 저이의 오래전 서늘한 눈매, 그토록 예고 없이 떠오르곤 하는 어떤 노스텔지어 한 조각. 이들은, 이미 끝났다 여겼던 정신적 물결을 언제고 다시 흔들어 재차 몰아치게 하기도 하겠으므로. 주요한 건, 순간 자체보다 그에 비롯된 흔들림이 우리 안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 차후 내내 우리를 어떻게 저 아래 뿌리부터 온통 혼란스럽게 하는가에 있으리라. 설령 그것이 뭐라 불리건, 이를테면 ‘트라우마’건 아니건 간에.
예의 파장은 정신의 ‘반응’이라기보다 그 ‘반응’ 사후 잔향에 다름 아닐 텐데. 때는 지나갔고 사건은 저리 쉽사리 대체되곤 하였다지만, 최소한 정신의 층위 곳곳에라도 당시 여운은 스며선 이를 토대로 작용할 양이다. 마치 넓은 숲에 아득하게 울려 퍼진 음색이 의도치 않게 몇몇 나뭇잎을 떨게 하듯, 지난한 떨림은 우리 안 무언가를 오래도록, 그리고 가늘고 은밀하게, 저만치 근본적인 무엇부터 당혹스럽게 초래해 놓곤 하지 않던지.
때문에 종종,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파도에 끌려 휩쓸리기도 하는 것이다. 저이의 말이 어째서 그리 마음 쓰였는지, 저기만 가면 왜 그토록 망연히 서글퍼지곤 하던지, 저와 같이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잔향들이 저토록 명확히 자리하는 것이다. 비로소 저것들은, 이미 이 안 어딘가 오래전부터 울려 우리를 구성하는 일종의 여진들인 셈일 터다.
과거의 흔적들은, 그에 아울러 영원히 작금을 구성하는 배경음이기도 할 텐데. 간혹 고요하리라 간주될지언정, 실제로는 그 아래 무수한 파고의 흔적들이 매번 새로운 해석이라는 또 다른 파고 자체를 늘상 격렬하게 구성하며 몰아치고 있을 양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도 도저히 다 알지 못하고 또 영영 알 수도 없을,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과거’의 차디찬 울림을 따라 아울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른바 과거에 관한 현재적 해석의 유속 아니겠는지. 고로, 때론 비명을 남기는 동시에 가능성 또한 품어내고야 마는 이 나름대로의 유속은, 그저 변치 않는 상처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언젠가 새로운 변화로 덧씌워질 수도 있는 ‘문’이나 ‘도약대’, 그러니까 끝내 ‘기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영영 울려 퍼지는 저기 저 정신적 축은 그 자체로 우리를 계속하여 다시 붙잡는 영원한 중력의 ‘아늑한’ 족쇄이기도 하면서, 또 우리를 새로이 움직이게 추동하고 강제하는 ‘폭력적인’ 동력이기도 하겠으니. 그리하여 삶이란, 그렇게 여지없이 겹쳐 울리는 과정 중 스며 이루어지는, 복잡하고 섬세한 생성의 떨림, 그 아득함 자체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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