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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과 바다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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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본질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의식은 원인들과 법칙들의 질서, 관계들과 그것들의 결합의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의식은 그것들의 결과를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기 때문에, 의식은 자연 전체를 잘못 인식한다. 그런데 도덕화하는 데는 잘못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확실히 법칙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해야만 한다>라는 도덕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 도덕 법칙의 혼란스러운 형식은 자연 법칙을 혼란에 빠뜨려서, 철학자는 자연 법칙이 아니라 단지 영원한 진리들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법칙이라는 말이 자연 사물에 적용되고, 따라서 모두 다같이 법칙이라는 말을 단지 명령만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유비에 의한 것이다…….> 니체가 화학, 즉 해독제와 독물에 관한 과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법칙이라는 말을 삼가야 한다. 그것은 도덕적 뒷냄새를 가지고 있다.

들뢰즈 / 스피노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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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세계는 관계의 양상이다>라는 문장을

<만물을 관계 양상으로 환원한다>
혹은 <관계 양상이 일종의 [전체성]이다>
로 (비판하기 위해) 혼동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말하자면,

<저 장난감은 태엽과 껍데기로 [구성]된다>는 문장은 결코

<저 장난감이 태엽이다>라거나
<저 장난감의 정체는 [구성]이다>라는
의미가 아닐 텐데.

그게 성립한다면, 아이는 [구성]을 가지고 노는 셈이다.

허나 ‘구성’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사용’될 수 없다.

물론 아이의 장난감뿐 아니라 저 모든 사물들이 무언가로 ‘구성’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구성된 장난감이 고장 났다고 해서 ‘구성’이란 개념이 고장났을 리 없지 않나.

관계 양상으로서 ‘관계 짓기’라는 개념이 세계를 구성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발화자에겐 관계 짓기라는 개념이 곧 세계를 (무려) [정의]내리는 전체성이다>라는, 다소 서투르고 또 서두른 결론은,

실상 이를 전제로 한 아전인수격 비판을 위한 서투르고 서두른, 다소 띨띨하고 <진지한> 도약 아니던가. <스스로 더욱 억울하기 위한> 진지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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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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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는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가?

기호 그 자체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책상’이라는 기호에 앉을 수 없다. 그러나 ‘책상’과 ‘의자’의 기호 관계에서 우리는 무언가 찾을 수 있다. ‘노트북’이라는 단어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물을 1대 1로 지칭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노트북’이라는 단어가 노트북 일반이라는 개념을, 그리고 그 개념에 얽혀 있는 사물들을 1대 다수로 지칭할 수도 있다. 앞선 문장에서 사용한 ‘사물’이라는 기호는 또 얼마나 많은 무언가를 지칭하겠는가? 심지어 ‘애착’이나 ‘증오’라는 기호가 지칭하는 건 ‘감정’이나 ‘관계 양상’으로서 다수 혹은 1개라는 단위로 소급될 수 없는 경우가 많겠으므로, 굳이 1대 1로 지칭하지 않더라도, 혹은 1대 다수로 지칭하지 않더라도 ‘의미’는 이런 지칭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 기호간의 얽혀 있는 관계 양상이 현실의 관계 양상과 얼마나 비슷한지에서 탄생한다. 이른바 ‘동형성’이다.

요컨대 현실과의 ‘동형성’이 연역의 ‘의미’를 최초로 가져온다. 가령 asdlkghasdklfj라는 아무 곳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단어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에겐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터다. 이 단어를 어딘가에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그 사용성이 관계 양상을 재구성하기 시작하겠으므로. 이 문맥에서는 의미가 없는 단어의 예제로서의 의미를 가질 터다.

‘바다’를 본 적 없는 이에게 ‘바다’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컨대 ‘파란색’이라는 바다와 관계된 또 다른 기호가 지칭하는 개념에 힘입어서이기도 하겠다. ‘바다’와 관계 짓게 만들어주는 그 외의 수많은 개념을 지칭하는 기호들 없이 그저 ‘바다’라는 단어가 그의 눈앞에 떨어지기만 한다면, 그에겐 난생처음 보는 ‘바다’라는 단어는 앞선 asdlkghasdklfj라는 단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테니.

요컨대 ‘바다’라는 글자 모양이 현실의 바다를 연상하게 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니니까. 너무나 놀랍게도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는 언어마다 다르다. ‘바다’라는 개념 기호가 다른 개념 기호들과 상호작용하는 관계 양상이 바다를 포함한 현실의 관계 양상을 본떠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바다’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셈이다.

‘현실’을 본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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