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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상상과 추론

시즌 2 SIGN

by 이채

우리가 문장을 편집하고 가공하려면, 편집 기술 이전에 문장 자체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절대적’ 현실을 인식하고자 언젠가 스스로 어림해 가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각적’ 현실이 먼저 있어야 할 터다. 말하자면 ‘환각적’ 현실이 ‘절대적’ 현실로의 길을 안내하고 있으리라.

현실 인식은 그저 감각적 대상의 인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요컨대 현실 인식은 그저 감각적 대상으로 여겼던 ‘사물’, ‘사건’, 나아가 ‘인물’들 간의 숨겨진 연관관계를 수반할 터다. 감각적 자명성의 차이는 당사자의 감각 기관에 의존하겠지만, 우리 각자가 감각의 ‘절대적’ 한계 위에서만 인지하는 대상은 우리 감각의 한계 너머에 그 ‘절대적’ 실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따라서 우리가 감각이라는 필터를 가지고 있는 이상 여기 ‘절대성’에 도달하는 건 기어이 불가능하겠으나 이를 추구하며 ‘감각’과 ‘인지’ 기능(직관)을 총체적으로 가공할 수는 있으리라.

소위 어떤 ‘생명’이라도, 예의 가냘픈 가설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생존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환경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리라. 그와 같은 안정감 위에서야 그는 자기 생존과 관련 없는 요소들을 활용(사용)하여 흔히 말하는 ‘자유로운’ 가설(환각)을 설정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하여 감각적인 단서들을 축으로, 그러니까 자극과 자극을 연결하여 인식에 도달하고자 설정하는 갖은 가설들을, 고로 아직 추론이 되지 못한 이 가설들을 아직은 상상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아늑한 상상은 전형적인 놀이의 출발점이다. 최초의 가설들, 유아적인 자기애(나르시시즘-거울상-죄책감을 동반하는 ‘초자아’의 예비 단계)는 1차원적인 상상을 자기 정신에 하나의 기호로써 새겨넣고, 이를 놀이(운동의 시행착오-공격성의 발달-‘죄책감’ 발달의 기본 전제)를 통해 전개할 수 있다. 그렇게 놀이는 해당 기호들을 작동시켜 그 원리들을 그 자신에게 호소한다. 그렇게 아이는 놀이를 통해 상상으로부터 원리를 솎아낸다. 상상 속에 숨겨져 있는 추론의 최초 원리는, 예의 발육 과정에서 아이에게 ‘유효성’을 축으로 현실 인식의 그림자를 비추어 준다. 이를테면 아이 자신이 방금 던진 어떤 사물은 ‘날아간다’고. 고로 아이가 ‘현실’을 추론하려면 가장 먼저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는 사물들 간의 관계들을 우선 ‘상상’한다. 이후 유효성 있는 상상만이 ‘놀이’의 작동 속에서 살아남고 기초 원리로 강화된다. 이를테면 ‘중력’을 배우기 전 유아는 이미 이를 전제로 '움직인다'. ‘비행’하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지만, ‘중력’을 토대로 한 ‘걸음마’의 실천(운동)은 어느 하나의 요소만 삐끗하더라도 운동 자체가 좌절되는 치열한 시행착오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유효한 운동은 이미 아이 당사자에겐 절박하기 그지없는 온갖 가설(이론)과 체험의 영역인 것이다. 이 체험적인 앎은, 요람에 싸인 아이의 ‘상상’ 중 요람 밖에서도 유효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요소라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사물들 간의 관계를 인식한 아이는, 이후 다시 그 사물들을 인식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물과 자신의 ‘관계’는 언젠가 사물과 타인의 ‘관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관찰을 탄생시킨다. 요컨대 이 시점에서 ‘타인’의 등장은 동일시된 ‘자기 자신’의 등장으로서, 이는 역지사지와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발달의 사전 단계일 테다. 이제 아이는 타인의 욕망(적개심)을 고려한다. 타인의 욕망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이는 희미하게나마 소위 ‘자아(존재(론)-구강기 과업)’를 확립한다. (타인의 적개심을 고려하는) 이 망설임(죄책감의 사전 단계)의 단계 이후에 자기 욕망의 대상을 움켜쥐기까지의 고려사항(반성의 사전 단계로서의 검열)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사물과 타인의 관계를 인식한 아이는, 이후 다시 타인을 인식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그는 자기와 같은 독립적인 인격으로서 ‘타인’의 정신을 그저 동일시(상상)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정신(관념과 정서 등)을 추론(공감-시뮬레이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타인과 자신의 ‘관계’는 어느 날 타인과 타인의 ‘관계’를 또한 ‘상상’하게 만들고, 그렇게 ‘사회’에 대한 관찰(인식)을 탄생시킨다. 요컨대 이 시점에서 ‘사회’의 등장은 동일시(되었던/될 수도 있을)된 ‘타인”들”’의 등장으로서, 이제야 그는 역지사지와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 과업의 발달 단계에 이르렀다 할 수 있으리라. 이제 아이는 ‘사회’의 압력(도덕-초기 초자아)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사회’라는 경험(형이하학)적이며 추상(형이상학)적인, 나아가 ‘절대’적인 개념(인식)을 거기서 “정서적으로” 확립한다. 이와 동시에 ‘죄책감’이라는 ‘개념’ 또한 “정서적으로” 확립한다. 이 둘은 ‘자아(존재)’를 전제로 한다. 죄의식의 반작용으로서 그는 이상적인 자기 자신(거울상 이미지가 아닌, 보다 정교하게 추상화된 초자아)의 개념을 또한 ‘사회’의 개념을 토대로 정립한다. 그는 이제 자기 이상(초자아)으로의 도달 여부를 좌절의 고통 속에서 타진하기 시작(청소년기)한다.

그는 계속해서 현실의 단서를 축으로 ‘상상’하고, 다시 분석한 현실의 단서(유효성)를 축으로 재차 이 ‘상상’을 솎아내는 '추론'을 시도해 왔고 해나갈 터다. 그는 그 자신을 ‘사용’하여 자기 이상(초자아)을 늘 발달시키는 동시에 이에 도달하고 또 이를 극복하고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가공할 모양이다. 거기에는 상대적으로 상상된 관념 속에서 절대적인 추론을 찾고자 하는 ‘현실 인식’의 필연적 노력이 (설령 무의식적으로라도) 늘 작동하고 있다.

그렇게 아이(인간)는 우선 현실을 ‘상상’해야 했다. 이후 다시 현실을 추론해야 했다. 원하는 그 어떤 것을 위해서든 간에.

현실이 그를 상상속에 내버려 두길 바라든지, 현실을 통제하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로 도피하고자 하든지, 때마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 대응하는 기량을 발달시키고 싶던지 그 모든 욕망의 관철 여부는 당사자가 촉발할 수 있는 저기 저 '현실의 유효(절대)성'에 달려 있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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