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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Oct 06. 2023

전시 '심연에 대하여' 프리뷰

권리아 개인전

전시: 심연에 대하여 - 권리아 개인전

작가: 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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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대하여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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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그림


어릴 적 우리 각자는 본 적 없는 현실을 우선 상상해야 했더랬다. 그렇게 우리네 망상은 기어이 얼마만큼 현실을 앞선다. 우리는 현실을 감지하기 전, 그리 감지할 현실을 우선 어느 정도는 그려 놓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미리 그려놓은 우리네 그림들 바깥의 무엇을 놓치곤 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우리 자신이 선점한 우리네 앎(과거) 밖으로 스스로 뛰쳐나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앎 또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롯이 반영할 수도 없고. 설령 우리 앎이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와 동시에 한편으론 우리의 어떤 앎도 어느 정도는 이미 ‘허구’다.


심연으로 말하자면, 심연이야말로 태생부터 이 허구를 통해 우리가 감지할 현실을 미리 그리는 ‘주체’이자 그리 그려진 ‘대상’ 아니던가. 그 위에 서서, 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현실을 감지하며 허구를 덧칠한다. 그렇게 우리는 심연이 먼저 그려놓은 밑그림을, 이제 현실을 감지하며 덧칠했고, 다시 덧칠하며, 또 덧칠할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심연이라는 뻥 뚫린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처럼 뻥 뚫린 밑바닥을 형용하며 덧칠되어 있는 이미지로서의 심연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기원


거기 '감지된 현실'로 덧칠된 심연에는 처음부터 가짜 아닌 것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보면, 무수한 덧칠 속에서, 덧칠 너머의 밑바닥을 살피는 일은 일견 요원해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우리 심연이 어떻게 이 가짜로 덧칠되어 있는지. 그리하여 이 덧칠들이, 하나의 현실로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살피는 건 다른 의미에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리라. 다만 우리가 여기서 목도하는 건 뻥 뚫린 밑바닥이 아니라, 그런 밑바닥이 만들어진 과정으로서 우리 자신이겠다.


그처럼 심연으로의 하강은, 자기 자신에 관한 뼈아픈 폭로를 스스로에게 동반한다. 이를테면 강점, 장점, 자랑스러움 뿐만 아니라 약점, 단점, 부끄러움을 다름 아닌 자신에게 폭로하는 이 하강은, 우리가 가진 이 망상의 기원을 앞선 시간 시점으로서가 아닌 그 작동의 원인으로서 추론하고 있을 양이다. 이는, 연속성 위에 있는 우리 신체만큼이나 우리 정신 또한 그 덧칠되는 연속성 자체에 의존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우리가 신체를 꾸미는 양상의 기원이 태어날 적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외부’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등의 ‘취향’에 있듯, 우리는 우리 관념의 작동 취향으로 덧칠되는 양상으로서의 ‘심연’을 발견한다.


#무지


관념(앎)에서 무지(심연)로 나아가자면, 우리 내부에 칠해진 덧칠(앎-관념)이 '함께하던 서로 다른 관념'을 비로소 연역할 수 있어야 하리라.


물론, 우리는 혹자의 이름을 선언하며 이를 안다고, 이제 알았다고, 고로 당 관념을 소유했다고 과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앎(덧칠)들은, 우리 내부가 이미 가진 덧칠(관념)들끼리의 관계를 엮어 스스로 무언가 연산하고 연역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성역 없이 이 덧칠들이 칠해진 방식을 모조리 폭로하다 보면, 그 무수한 폭로의 시행착오 내에서야 비로소 ‘예상하지 못했던’ ‘주체’이자 ‘대상’이 하나의 심연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혹은 비로소 그것이 ‘외부’에서 그제야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그것이 그제야 비로소 감지된 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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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아트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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