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채집인의 뇌로 21세기를 살며
살면서 ‘비교하지 말자’만큼 자주 다짐하게 되는 말이 또 있을까? 늘 마음속으로 되뇌지만, 이미 크게 성공한 친구를 보거나 주식·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쓰라리다.
우리는 안다. 옆의 친구가 잘 나가고, 누군가가 나보다 더 많은 재산을 쌓았다고 해서 내 생존이 위협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이 수렵채집인으로 살던 시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때는 매우 한정된 자원을 부족 사람들과 나누어야 했고, 옆 사람보다 과일 하나라도 더 가지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되었다. 비교가 생존의 본능이었던 셈이다.
오늘날에도 자원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셰일가스 혁명이나 원자력·풍력·태양광 같은 에너지 기술로 에너지 고갈에 대한 걱정도 줄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수억 년을 거쳐 일어난다. 인간이란 종이 등장한 지는 불과 몇 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뇌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마음으로는 ‘남들보다 하나 덜 가져도 괜찮다’고 다짐하지만, 진화가 더딘 탓에 생존 메커니즘으로 각인된 ‘비교’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예전에는 같은 마을 사람들과 비교했다면, 지금은 인터넷과 인스타그램 속 수많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과거엔 비교의 범위가 수 십 명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은 수천에서 수 만 명 이상이 되었다. 뇌의 구조는 그대로 인데, 비교의 대상만 급격히 늘어난 셈이다.
물론 비교라는 동기가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사회와 기술이 발전한다. 부와 지위를 얻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마치 남들보다 과일 하나, 생선 한 점이라도 더 먹지 않으면 내일 죽을 것처럼 자원 쟁탈에 몰두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 투쟁이 과연 행복으로 이어질까?
이 글은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깝다. 중·고등학교 시절 경쟁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그 관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공부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보며, 비교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비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