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못 버틸 것으로 예상됐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2주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기준으로 하루 25조원이나 쏟아붓는 격한 전쟁이 계속되면서 군인 및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점령한다는 러시아 군의 계획과 반대로 여러 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주장은 ‘러시아의 총체적 난국’입니다. 러시아 군 사기저하와 보급 부족, 전쟁물자 관리 상태 엉망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탱크와 장갑차로 구성된 기갑부대와 보급 차량들이 제대로 진격을 하지 못해 발이 묶인 상황이죠. 여기엔 특별한 현상인, ‘라스푸티차’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그렇다면 라스푸티차란 무엇일까요?
우크라이나 전쟁과 자동차를 주제로 이 현상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라스푸티차는 동유럽과 러시아 인근에서 발생하는 자연현상입니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사람, 동물, 자동차 모두 이동하기 어려운 진흙탕이 발생하죠. 발생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이동하려면 땅을 단단히 다지고 아스팔트를 깔아 놓은 도로로만 가야합니다. 이외 지역은 차 바퀴가 파묻히기 때문에 사실상 주행이 불가능하죠.
라스푸티차가 발생하는 시기는 주로 해빙기인 3월과 비가 자주 내리는 10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흙자체가 물을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에 늪 같은 진흙탕이 쉽게 만들어지는 환경이죠.
이렇다보니, 장갑차나 탱크에 장착된 무한궤도형 차량도 속수무책입니다. 보통 궤도형 차량은 험한 지형에서도 잘 달리지만, 라스푸티차가 발생한 지형에선 일반 차들과 마찬가지로 얌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당지역을 오가는 차량은 험로주행을 위해 사륜구동인 경우가 많고, 기어비 자체도 저속에서 높은 토크(힘)을 낼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일부 차량은 궤도형으로 개조해 다니기도 하죠. 또, 타이어 역시 우리가 흔히 보는 종류와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겨우내 건조한 환경이기 때문에 이런 지형이 드물지만, 과거 비포장길이 많던 80년대 이전엔 장마철을 중심으로 진흙탕길이 펼쳐져 차로 이동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라스푸티차가 발생하는 지형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지만, 오히려 이 단점이 상황에 따라서 천연 방어 시설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 지역을 침공했을 때 공격을 지연시키고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던 프랑스군이 라스푸티차를 건너오면서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고, 보급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결국 후퇴를 결정합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시간이 흘러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소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두 국가의 병력만 해도 6천만 명 이상이 동원됐던,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쟁으로도 평가받는 이 사건은 강추위와 라스푸티차가 크게 활약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기갑부대를 내세운 나치 독일의 선전이 예상됐으나, 보급거리가 베를린에서 모스크바까지 천 킬로미터 넘는 상황이 되면서 군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라스푸티차가 발생해 진흙탕에 빠진 탱크들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이동하는데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겨울이 찾아왔고, 시베리아의 강추위로로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죠. 이로 인해 소련이 승기를 잡고 베를린까지 진격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라스푸티차 자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적군의 이동을 늦춰 시간을 버는데 도움을 줬다는 점에선 평범한 진흙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스푸티차 현상은 2022년 러시아군을 실시간으로 괴롭히는 중입니다. 러시아군은 부실한 무기관리, 빈약한 보급, 땅에 떨어진 사기로 고전 중이었는데, 설상가상 얼어 있던 우크라이나 영토가 녹기 시작하면서 라스푸티차가 시작됐습니다. 이로 인해 기갑부대의 진격이 느려졌고, 보급까지 지연되면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장갑차와 탱크 등은 진흙탕이나 강추위 같이 가혹한 환경을 고려해 만들었 습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라스푸티차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고 각종 군 장비들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80%가 농작이 가능한 ‘흑토’ 지대이며, 이 때문에 ‘유럽의 식량창고’라는 별명까지 있습니다. 즉, 지형 대부분이 라스푸티차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의미로 우크라이나 군 입장에선 천연 장애물을 카펫처럼 깔아 둔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은 과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라스푸티차로 패전했듯, 러시아 역시 전철을 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 백대 넘는 전차들이 진흙탕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버리고 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군은 이를 노획해 역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라스푸티차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옛 위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분명 한 곳에 존재하던 자연 현상일 뿐인데 침략군으로부터 죄 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왔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갈까요?
러시아 탱크, 장갑차 무덤 된 우크라이나 최악의 도로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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