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상해 이야기 17-빛과 그림자

by 안나

2022년 8월 5일 금요일


`안나지에安娜姐`


은행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저를 부르는 호칭이에요. 제 이름이 발음도 어렵고 길거든요. 그래서 실명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면 다 영어 이름인 안나로 해요. 타오바오에서 물건 시키거나 허마에서 야채를 시켜서 받을 때도 수취인 이름을 안나로 하거든요. 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치세요.


제가 지난해 10월에 상해로 왔을 때부터 신기하게 여기세요. 아침마다 출근해서 커피 내려서 마시는 것도 신기해하시고 제가 싸온 도시락을 보면 항상 놀라세요. 중국 분들은 생 야채 잘 안 먹거든요. 제가 생 야채 위주로 도시락을 싸 오기 때문에 제가 먹는 모든 것이 다 신기하시대요. 상해 봉쇄 기간 동안 제 걱정도 하셨대요. 봉쇄 해제 후 출근해서 만나니까 그동안 야채 공급이 잘 안 되어서 안나지에가 먹을 것 없었겠구나 생각하면서 걱정하셨다고 하시네요.


제게 배달 오는 모든 물건과 서류는 포장과 봉투를 다 벗겨서 알맹이만 가져다주세요. 포장과 봉투가 지저분하고 뜯고 열기도 번거로우니 본인이 다 뜯어서 내용물을 가져다주세요. 제가 무엇을 사고 먹는지 다 아세요. 가끔 개인적인 물품도 있는데 다 포장을 벗겨서 주시니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주머니의 성의에 감사드려야죠. 저를 잘 살펴주시고 많이 도와주세요. 고향에 갔다 오면 특산이라고 깨 과자도 사 오시고 집에서 경단도 만들어왔다고 먹어보라고 주세요.


저희 아주머니는 지앙수 앤청 江苏省 盐城에서 오셨어요. 호구도 취업 허가증도 없어요. 취업허가증이 없으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낼 수 없어요. 사립이나 국제학교를 보낼 수 있지만 외지에서 일하려 온 노동자들이 그런 학교를 보내기는 어렵죠. 취업 허가증이 있으면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낼 수는 있지만 대도시의 호구가 없으면 집도 차도 살 수 없어요. 신분증, 혼인등기, 여권을 만들고 연장, 재발급하는 것도 호구가 있는 자기 고향 가서 해야 해요. 이 호구제가 바로 중국의 신카스트랍니다. 5년 이상 대도시에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내면 제한적으로 집이나 차를 살 수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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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시작된 호구제는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집중화 현상을 막으면서 중국 경제 고속 성장이 가져온 번영과 풍요를 대도시 거주민들에게 편중시켰습니다. 누구나 도시에 살고 싶어 합니다. 호구제로 도시 간 이동을 막았고 의료, 교육, 사회 인프라는 대도시 호구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기본권인 이동과 거주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나 있어요.


호구제의 끝판은 입시입니다. 대도시의 호구가 없으면 자기 고향에 가서 입시를 해야 합니다. 고향에서 입시를 하는 게 뭐가 문제냐 할 수 있어요. 누구가 가고 싶어 하는 절대명문 북경대의 입학 정원은 3,000명 정도예요. 전국 입시 학생 수는 1,200만 명 정도 되어요. 북경시 입시 학생 수 5만 명 정도예요. 500명이 북경 TO예요


1,200만 명 중에서 3,000명 안에 드는 게 쉬울까요.

5만 명 중에서 500명 안에 드는 게 쉬울까요.


계산기 안 눌러봐도 알 수 있어요. 각 대도시마다 명문대 TO가 따로 있기 때문에 도시 호구를 가지고 있는 게 훨씬 유리해요. 대도시의 호구에 대한 이글거리는 욕망의 불꽃은 꺼질 수 없는 이유랍니다.


대도시 호구를 받으려면 점수를 따야 해요. 학력, 직장 규모, 급여 수준, 근무 년수로 점수를 매깁니다. 고학력, 고임금의 좋은 직장을 다니는 젊은 엘리트들이 호구를 받게 되는 거죠. 저희 아주머니나 기사님, 보안 직종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수로 호구를 받는 것은 어려워요. 호구를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면 호구를 받을 수 있어요. 대도시 호구를 가졌다는 것은 결혼 시 유리한 조건이 됩니다.


상해를 비롯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경제 성장과 자산 가치 상승의 풍요로움을 향유하면서 외지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저렴한 서비스를 누립니다. 어느 사회든지 기득권을 떠받치는 것은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입니다. 중국에서 부의 양극화,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호구제를 개선하는 방침은 조금씩 나오고 있으나 그동안의 기득권을 흔들기는 어려울 거예요. 누구에게는 호구제가 기득권을 유지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빛이지만 누구에게는 넘사벽이자 세습되는 어두운 그림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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