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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20-겨우 서른

by 안나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를 했습니다. 중공이라 불리면서 희미하던 존재였던 중국은 우리의 인지 영역으로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북한과 동일한 거리로 멀리 하던 중국이라는 나라가 손 잡고 함께 가야 할 짝꿍이 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개방하기 시작한 한국 경제에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국토 안에 4계절의 기후와 모든 산업 코드가 다 있을 정도로 제조업 기반을 갖춘 중국은 좋은 짝꿍이었습니다. 집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온 우리에게 중국은 골목 안 놀이터에서 놀이판을 깔아주었고 놀이 기구를 탈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저렴한 인력과 다양한 원자재를 가진 중국은 우리에게 중개 및 가공 무역이라는 디딤돌을 놔주었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어떻게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는지 습득하면서 모범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13억 인구에게 1원짜리 물건만 팔아도 13억 원이라는 단순한 수치는 모두에게 거대한 시장이 열렸다는 희망과 기회를 주었지만 1원만 손해 봐도 13억 원 적자가 난다는 쓰라림을 못 보는 오류도 있었습니다. 짬짜면도 아닌데 중국 진출에 대한 우리들의 성공과 절반은 반반이었습니다.

한중의 알콩달콩 소꿉놀이는 짝꿍이 커지면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키와 덩치가 훌쩍 커진 짝꿍은 골목에서 나가서 큰길에서 달리기 시작하면서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짝꿍 손을 놓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놀이터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 떠 있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독일에서 탄광 일과 간호 일을 하셨던 부모님, 중동 사막에서 수로공사를 했던 삼촌 세대의 희생과 기여로 급속도로 경제적 기반을 이룬 대한민국에서 성장했습니다. 풍요로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은 중국이었습니다.


2008년 북경 올림픽 이후 중국에 태어난 세대는 태어나보니 자기 나라가 G2이네요. 전 세계 7군데 있다는 불가리 호텔 중 2군데가 자기 나라에 있고 전 세계 최대 명품 샵이 편의점처럼 흔하고 장 보러 갈 때 마이바흐 몰고 다니는 나라에서 성장한 90后호우, 00后호우에게 한국은 그냥 얄밉게 공부 잘하는 모범생 같은 나라이지 두려워하거나 고려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중국은 한중수교 30주년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중수교 100년 그 이상의 시간을 봅니다.


우리가 있던 골목은 이제 광야가 되었습니다. 블록체인처럼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글로벌 공급 체인은 여기저기 툭툭 끊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전히 포화가 끊이지 않는 전쟁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고 대동단결한 유럽은 러시아에게 계속 가스 대금을 송금해야 하고 러시아에서는 자산 동결 따위는 상관없이 국가 재정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원유 가격 상승으로 아람코는 사상 최대 수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습니다. 광야에서 목 놓아 불러도 초인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 초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한중 수교 30년 되는 이 날.. 생일 케이크는 고사하고 미역국 하나 없는 2022년 8월 24일 광야에 서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수라 님의 노래 `아! 대한민국`의 가사에서 차용했습니다

*이육사 님의 시 `광야`에서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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