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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26-시설 격리 6일차

by 안나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해외 입국자 격리 시설은 수많은 화제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격리 시설의 수준, 비용, 업무 처리 방침과 태도 등.. 뭐 하나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에 들쭉날쭉,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입국 당시 중국의 코로나 확진자 상황에 따라서 해외 입국자에 대한 격리 강도와 시간이 바뀌었고 지방 단체마다 시설 격리에 대한 방침도 모두 달랐습니다.


제비뽑기도 아니고 입국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황에 관계없이 격리시설로 끌려가야 했어요. 자기 돈 내면서도 수용자 취급받아야 했어요. 삶이란 게 본인의 선택보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하지만 이런 유동성과 불확실성은 없습니다.


3월 상해 봉쇄 이후 상해로 오는 직항은 항저우, 닝보, 지난으로 우회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우회 입국으로 당시 입국했던 분들은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했어요. 9월부터는 상해로 입국할 수 있었지만 격리 시설의 수준과 비용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민항취의 경우 평소에 300 위안 대였던 저렴한 호텔들이 격리 비용을 500~600위안으로 올려 받고 있어요.


격리 시설의 청결도와 관리도 문제입니다. 격리 시설이면 깨끗해야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은 오로지 소독약만 뿌립니다. 방에 들어가서 모든 청소는 다 자기가 해야 하고 청소도구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일부 격리 시설은 자체 매점과 식당이 있어서 폭리를 취하기고 하고요. 냉장고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냉장고를 비치하지 않거나 사용 못하게 해요. 욕조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시설도 많아요. 외부 음식 배달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주는 도시락만 먹어야 해요. 기름에 절은 도시락


해외 입국자에 대한 시설 격리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된 매뉴얼도 지침도 합리성도 없는 격리를 오늘도 수많은 해외 입국자들이 당하고 있어요.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야 좋은 호텔로 간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복불복, 케바케인 격리 시설 배정은 운입니다.


저는 이번에는 비교적 양호한 시설로 배정받았어요. 2005년에 지은 호텔이고 2013년에 리노베이션을 한번 했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잘 배어있는 예전 크라운 플라자 호텔이에요. 다행히 수납장과 서랍이 있어서 물건들을 여기저기 늘어놓지 않아도 되어요. 책상도 제법 커서 노트북 아이패드와 메모장도 놓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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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격리도 하다 보면 요령이 늘어요.

생수병을 이용해서 필통을 만들고 생수통을 이용해서 과일 통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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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카펫이라서 먼지가 많아요. 징동에서 돌돌이 시켜서 청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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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시설의 필수는 샤워 필터예요. 전 상해 집에서 쓰는 것 가지고 왔어요.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중국에서 사용하면 되니 좋은 걸로 하나 사 오세요.


10일이나 있으니 수건 세탁도 해야 해요. 보통 호텔에서 쓰는 수건은 깔개나 발수건으로 사용하고 자기가 쓸 수건은 가지고 오는 게 좋아요. 빨래 너는 것도 머리 써야 해요 마땅히 걸 곳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커튼레일에 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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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소파가 있어요. 아무리 돌돌이하고 페브리즈 뿌려도 찜찜했는데 큰 수건 하나 더 달라고 해서 수건을 잘 싸주었더니 앉을만해요.


물 끓이는 전기 포트는 필수예요. 저는 평소에 다른 나라 다닐 때도 쓰는 전기 포트가 있어요. 미니 쿠커 있어야 해요. 라면이나 즉석식품 끓여 먹거나 쪄 먹을 때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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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마실 게 필요해요. 전 커피 추출 도구 챙겨 왔고 차는 티백으로 가지고 왔어요.


식사는 보통 하루에 100위안 정도 해요. 먹을 만하게 주지만 같은 조리법으로 한 음식을 매일 3끼 먹으면 질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지난해에도 밥 안 시켰고 이번에도 식사는 안 한다고 했어요. 제가 준비해 간 음식으로 먹고 있어요. 파블로프 효과처럼 식사 시간 되면 자동으로 먹게 되는 것도 싫고 제공되는 식사가 저하고는 맞지 않아요. 평소 1/3 아니 1/4 정도만 충분해요. 말린 야채, 버섯 가지고 와서 불려서 같이 먹고 단백질 음료를 2번 정도 마시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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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은 서양식으로 먹고 점저는 한식 비슷한 컨셉으로 먹어요. 중간에 과일, 견과, 요구르트 같은 것 챙겨 먹고 비타민과 유산균도 먹어요.


과일은 배달이 가능해요. 방토는 되냐고 물어봤더니 채소라서 안된대요. 방토가 채소일까요 과일일까요. 구글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사과, 대추, 훠롱과火龙瓜 시키면서 슬쩍 방토 끼워 넣어서 받았어요. 격리할 때 잠을 잘 자기 힘들어요. 그나마 여기는 베딩이 좋은 편이에요. 한국에서 병원 갔을 때 미리 말씀드려서 신경 안정제 좀 받아왔어요. 격리 기간 동안만 먹겠다고 했어요.


돗자리를 타오바오에서 12위안 주고 시켰어요. 스트레칭용으로 가로 세로 2m로 넉넉히 넓은 걸로 샀어요. 스트레칭이나 복근 운동은 아무래도 침대 위에서 하기 어려운 데 바닥에 누워서 하니까 좋네요. 요가매트 깔아서 사용하니 좋네요. 이건 시설에서 나갈 때 두고 나가려고요.


저는 40제곱미터 방안에 있지만 바깥세상은 참 다이내믹하게 돌아가네요. 제가 사는 아파트가 또 동별 봉쇄 들어갔어요. 9월 30일에 상해 들어온 입국자들이 오늘로 격리 풀리는 날인데요. 창닝취 호텔에 격리되신 분들은 이유도 없이 7일 추가 격리 통보받으셨어요. 시설 격리하면 그 안에서 푹 쉴 것 같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호캉스처럼 릴랙스는 안되어요. 방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 동향에 귀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가 10월 10일 밤에 또 이틀 봉쇄되었어요. 여기 자는 데 봉쇄하는 게 특기인가 봐요. 다른 일처리도 이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면 좋을 텐데요. 저는 시설 격리 중이 아니었어도 출근 못 했겠어요.

책 6권 가지고 왔어요. 밤에는 못 읽어요. 조명이 어둡답니다. 낮에 부지런히 읽어야 해요. 75일도 아파트 안에 있었는데 10일 정도야 가볍게 보낼 거라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도 있는데요. 자유 없이 갇혀 있는 것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매번 싫답니다. 상해에 온 지 1년 되었는데 그중 1/4을 봉쇄와 격리로 보내네요. 방 안에서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어요. 다음에 한국 가면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볼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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