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의 서울의 밤
북경이나 상해나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한인촌이 생겨났어요.
아무래도 한국을 오고 가기 편해야 하니까요. 북경 왕징望京 한인촌은 수도공항에서 20Km 정도, 상해 홍췐루虹泉路 한인촌은 홍차오 공항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어요. 무엇보다 집 월세가 저렴했던 곳에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한인촌이 생겨나요.
북경 왕징은 쓰취四区라고 불리는 왕징신청望京新城이라는 아파트가 생겨나서 이어서 싼취三区, 화딩华鼎 이런 아파트들이 지어지면서 한인촌이 형성되었어요. 상해 홍췐루는 금수강남锦绣江南이라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면서 교민들의 거주지가 되었어요.
북경 왕징은 이제 한인촌이라는 말이 어색해요. 한국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나 식당은 거의 없어요. 여전히 교민들이 모두 왕징에서 모여서 살지만 점점 규모가 줄어요.
주거지역만 놓고 보면 북경은 90%는 왕징에 모여 살아요.
한인 식당과 슈퍼들이 띄엄띄엄 여기저기 있고요.
상해는 주거 지역은 홍췐루, 구베이, 푸동, 시내지역, 칭푸, 송지앙 여러 군데 흩어져 있지만 대부분 홍췐루에 살아요. 상가와 식당도 거의 홍췐루에 모여있고요.
코로나 이후 봉쇄를 간헐적으로 반복하면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분들이 많아요.
지난해 상해 봉쇄 때 홍췐루에 걸어 다니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지금은 웬만한 식당은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는 줄을 서야 해요. 학생들의 하교 시간과 퇴근 시간에는 항상 홍췐루는 길이 막혀요.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게 빠르고 주말에는 교통경찰까지 배치되어서 정리를 할 정도로 차와 사람들로 붐빈답니다.
중국 사람들은 편리한 매트릭스 기억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제로 코로나와 봉쇄에 대한 기억을 다 삭제해버렸나 봐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울고 가겠어요. 아바타에서 기억 삽입과 복제는 저리 가라네요. 홍췐루의 밤은 화려하답니다. 한국 음식과 물건을 파는 곳이지만 주로 교포 분들과 중국인들이 해요. 되돌아온 홍췐루의 붐빔과 북적임을 한류의 부활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태국 음식을 먹고 타이 마사지를 받고, 일본 오마카세를 먹고 동전 파스를 산다고 해서 태국의 문화, 일본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중국인들이 홍췐루에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마트에서 우리나라 과자를 산다고 해서 한류라고 과대평가할 것도 흥분할 것도 아니에요. 상해에 와서 예원, 와이탄 가듯 홍췐루도 한번 들려서 음식 먹고 한국 상품 중에서 좋고 맛난 것 있으면 사는 거예요.
2월 말에 상해에 있는 한국 문화원에서 상하이 한국 영화제가 열렸어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9830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예능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는 중국 사람들은 있어요.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혐한이고 한류고 할 것 없어요. 중화민족이라는 대중화 사상으로 한국은 수많은 변방의 하나일 뿐이에요. 13억 넘는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그 중에서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관심 있지 않아요.
그래서 홍췐루에 중국사람들이 와서 음식 먹고 물건 사는 것을 한류라고 볼 것도 아니고 안 온다고 해서 혐한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우리 물건이 좋고 우리 음식이 맛나면 사지 말래도 먹지 말래도 알아서 사고 먹어요. 한류이 뭐니 하면서 그렇게 애달아할 것도 없어요. 상대방은 관심 없는 데 구애하면 더 없어보이잖아요. 한류, 혐한 이야기 할 시간에 연구와 노력을 하는 게 나아요.
돈에는 눈이 있고 피보다 돈이 진하다죠.
동방의 파리, 다른 나라에서 석유등 켜고, 촛불 켜고 있을 때 이미 전깃불을 켜고 엘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백화점에 모던 걸이 하이힐 신고, 모던 보이들이 시가 물고 모자 쓰고 쇼핑을 즐기던 화려한 상해의 밤,
서울야시장이라는 간판 아래 전등이 은하수처럼 빛나는 물결을 이루고 인파로 출렁이는 홍췐루 한인촌의 밤이 쓸쓸하지 않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