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려면 최소한 2시간 정도 그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요.
무서운 영화 싫고 잔인한 영화 싫고 코미디 영화도 싫고. 뭐 영화 안 볼 핑계는 하늘의 별만큼 많아요.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은 다 귀로 들으면서 화면을 가끔 보는데 영화를 그럴 수 없어서요. 제가 TV를 안 보는 이유가 그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도 없고 그러기도 싫어서요. 모든 영상은 아이패드로 봐요. 집 안에서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으니까요. 주로 집안일을 하면서 노동요처럼 이렇게 틀어놓거든요. 이런 제가 지난 주말에 영화를 봤어요.
<유령>과 <교섭>
한국에서는 동시에 개봉이 되었나 봐요.
제가 유료로 보는 사이트에 2편이 올라왔어요.
<유령>은 뷔페식당에서 식사한 기분이에요.
너무 많은 음식이 있어서 뭘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각기 원탑을 해도 될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출연해서 각자의 에피소드를 전개하네요. 처음 시작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비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줬고 중간에 5명을 한 호텔에 불러 모아서 유령을 찾겠다는 장면에서는 아가사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생각났어요. 망작이라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재미있겠다고 몰입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유키코 역을 맡은 박소담 님이 식탁 테이블 위로 뛰어오르면서 흐름이 흐트러졌어요.
마지막은 서부 영화로 끝난 느낌.. 한국에서 어느 정도 흥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소리는 못 들었겠네요. 이 영화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에요.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경성에서도 독립운동을 하는 항일 조직 흑색단 이야기예요. 여기서 상해가 나와요.
누가 뭐래도 중국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으면 우리나라의 임시정부도 독립운동도 힘들었어요. 서구 열강들의 조차와 이른 개항으로 자유로웠던 분위기가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가 중국에게 진 신세예요.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한 임시정부청사,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 등등 소중하고 보존해야 할 역사적 장소는 중국에 있어요. 소유권과 관리권은 중국에 있어요. 우리가 중국에게 고마워해야 해요. 우리에게 소중한 장소를 지키고 관리하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요. 독립 운동 하셨던 분들의 후손들도 중국에 사세요. 이 분들이 명예롭게 살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에요.
사실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여유롭게 한가하게 독립운동하지 못했죠. 우리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맘 놓고 멋지게 총 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그랬을 거라는 상상은 즐겁잖아요.
<교섭>은 국정원, 외교부 홍보 영화인 줄 알았어요.
비싼 한정식 식당에 갔는데 주식은 안 주고 반찬만 먹으라는 느낌이에요.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파장이 크니 그 부분은 빼고 과정만 보여주네요. 현빈 님 멋지고 황정민 님의 늘 열정 넘치는 연기는 훌륭해요. 제가 재외국민으로 십 년 넘게 살면서 저렇게 일하는 국정원, 외교부는 죄송하지만 보지 못했어요. 열심히 일을 하시지만 왜 재외 국민들은 느끼지 못할까요?
재외 공관이 재외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재외 국민이 재외 공관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국가가 조력자가 되어주고 구조해 주길 바라는 것은 영화에서만 가능할까요? 도움 받았다는 사람보다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는 뭘까요?
지난해 상해 봉쇄 때도 다른 나라 공관들이 했던 것하고 우리나라 공관이 했던 것을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아요. 제게는 나라가 있어요. 몇 십 년 전만 해도 나라가 없어서 중국 땅, 만주 땅 여기저기 떠돌면서 그렇게 찾고 지키고 싶었던 나라요. 그 소중한 나라가 우리를 지켜주고 도와줄 거라는 믿음은 순진할 걸까요.
한국에서는 공휴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삼일절도 여기 상해에서 맞이하면 비장하답니다.
영화 유령에서 이런 대사가 나와요.
`나라 팔은 사람은 안 다쳐요. 지키는 사람만 다치죠.`
영화 <유령>은 망작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 대사를 남겼어요.
영화 <교섭>은 뭘 남겼는지 교섭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