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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봉쇄 1주년, 남기기 위한 종이책 <안나의 일기>

by 안나

외진 골목에 버려진 핵산 검사 부스, 빛바랜 코로나 주의 사항 안내 스티커만이 지난 3년 동안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느끼게 해 줘요. 중국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코로나라는 단어도 들을 수 없어요. 13억 명의 기억에서 3년 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있었던 일과 고통은 몽땅 싸서 스페이스 X의 로켓에 실어서 달나라로 보내버렸나 봐요.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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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지 알아라 하면서 절대 걸리면 안 되는 불치병처럼 모두를 제로 코로나 정책의 감옥에 가둬 놓더니 언제는 빨리 코로나에 걸려라, 너는 왜 아직도 안 걸렸니 닦달하면서 모두 위드 코로나의 절벽 위로 밀어붙였어요.


전 인민이 누구나 직, 간접으로 상주가 되었고 13억 명의 인구 중 10억 명은 감염이 되면서 중국은 불과 두 달 만에 코로나 집단 면역을 속성달성했어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엔딩보다 허망하게 끝났어요. 중국의 리오프닝에 전 세계 항공, 호텔 주가가 들썩였고 러, 우 전쟁으로 도미노처럼 생기는 글로벌 공급망의 경색과 세계 경제 침체에 하늘에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온 듯 좋아했어요.


봄이 온다는 춘절이 지났고 한국보다 남쪽에 있는 상해에 여기저기 봄 느낌이 느껴져요. 이제 롱패딩이 살짝 무거워지려고 해요. 상하이 저널이라는 교민 신문이 있어요. 상해에서 벚꽃 피는 곳에 대한 기사였어요. 전 순간 지난해에는 왜 벚꽃을 못 봤지 했어요. 제게 2022년의 봄은 없었네요. 아파트 안에 갇혀 있느라고 벚꽃이 피었는지 졌는지 꽃잎도 못 보았네요.


지난해 3월 초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시작한 상해 봉쇄는 전 지역 봉쇄 2 달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저는 75일간 아파트 안에서 흰 벽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 수용 시설로 끌려가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어요.


지난해 6월, 저는 봉쇄 기간 있었던 75일 간을 기록한 일기를 다음 브런치에서 전자책으로 냈어요. 어느 분이 은행에 오셔서 제게 종이책으로 내달라고 하셨어요. 본인은 전자책을 못 읽는다고요. 그동안 상해에서 있었던 우리들이 겪은 이이기를 읽고 싶다고요. 그분의 말에 저는 종이책을 만들기로 했어요.


누가 제 책을 돈을 주고 사겠어요. 다음 브런치와 연결된 부크크 출판사에서 주문 출판 POD Printing on Demad 방식으로 내면 비용 없이 출판이 가능하더라고요. 돈을 안내도 되지만 모든 것은 제가 다해야 했어요.


편집을 맡기려면 한 페이지 당 2,000원이에요. 약 42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해요. 책을 기념품처럼 가지고 싶어 하는 분도 있지만 일개미에게는 그렇게 하기에는 버거운 기념품이에요.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 인지도가 필요한 정치인도 아닌 많은 비용 들여서 화려하게 예쁘게 만들 수도 없고요. 일개미답게 뚝딱뚝딱 만들었어요.


표지는 전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서 디자이너 분에게 비용을 드렸고 삽화 지도는 천진에 계신 함경락 선생님께서 그려주셨어요. 나머지 모든 것은 다 제 손가락과 손목으로 했어요.

중간에 파일 날리고 다른 분이 봐준다고 했다가 포맷 다 틀어져서 다시 일일이 맞추고.. 중간에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하지 말까.. 누구하고 선인세 받고 계약서 쓴 것도 아닌데.. 이러면서 소심해지고 있었어요.

영원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제로 코로나 지옥이 갑자기 위드 코로나로 급전환되면서 코로나 소탕작전이 게릴라전처럼 진행되었어요. 저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2023년 3월, 이제 중국에서 코로나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어요. 코로나라는 단어는 금기어처럼 되었고 그동안 일었던 일은 암묵적 동의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봉인되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있어요. 이러다가 나중에 우리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한 적도, 상해 봉쇄를 한 적도 없다고 하겠네요.

저는 다시 힘을 냈어요. 날짜 콕콕 박아서 기록으로 남기기로요. 아무도 안 읽어주고 한 권도 안 팔려도 괜찮아요. <난중일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읽지는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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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안나의 일기>는 중국에서 살면서 북경, 상해 양대 도시에서 모두 락다운을 경험했고 코로나 정책으로 있었던 모든 전 과정을 미쉐린 레스토랑의 파인 다이닝 코스처럼 풀 코스로 경험하고 상해 봉쇄는 메인 디시로, 해외 입국자 격리는 디저트로 받은 제가 중국에게 하는 소심한 복수예요.


당신은 기억 못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기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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