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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53-깜빡했어요(노동절 연휴)

by 안나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연휴에 중국에 있어본 적은 없어요.

한국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갔어요. 2020년에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해외입출국이 막히면서 얼떨결에 중국에서 연휴를 보내게 되었어요. 북경에서 살 때는 북경 안에만 머물러야 했고 상해로 와서 맞이했던 연휴는 봉쇄로 아파트 안에서 솔솔 흘려보냈어요.


올해 노동절 연휴에 그동안 한국을 못 갔던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갔는데 저는 미리 준비를 못했어요. 구할 수 있는 비행기표는 너무 비쌌어요. 그래서 평소 하고 싶었던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조영헌 교수님의 <대운하 시대> 책을 보고 대운하를 따라서 가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어요.

항저우에서 시작해서 베이징까지 흘렀던 대운하를 따라서 가보겠다는 제 꿈은 양저우에서 멈추었어요. 상하이 홍차오역이 생긴 후 처음으로 노동절 연휴 기간 동안의 모든 표가 매진되었대요. 어쩐지 보통 명절이나 연휴 기간에 한 사람 자리는 대기 걸면 웬만하면 자리가 났었는데요. 돌아오는 날까지 기차표를 못 구해서 버스 타고 왔어요. 기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씩 버스 타고 다녔어요.


최근에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대학생들에게 먹을 것으로 꼬치구이를 보급해 주면서 꼬치구이로 유명해진 산둥성 쯔보淄博는 관광객들이 너무 몰려서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고요.

청시대 고성이 잘 보전되어서 청나라 시대 냉동고로 불리눈 산시성 핑야오구청平遥古城은 공산당 위원회 주차장까지 개방했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관광지마다 바가지요금은 기본이었어요. 평소 500위안이던 호텔비가 2~3배 올랐어요.


상해에 있었던 사람들도 널널하지는 않았어요.

황푸강변에 있는 와이탄과 난징동루는 몰려든 사람이 많아서 둥둥 떠다녀야 했어요.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아서 괜찮은 식당은 못 가고 대충 국수나 먹어야 했대요.


원래 중국이 사람 많기로 1,2위를 다투는 데 그걸 코로나 봉쇄로 그동안 잊고 있었네요.

3년 동안 저만 갇혀있었겠어요. 다들 손에 물병 들고 먹을 것 들고 나들이 나왔네요. 국내 관광을 한 사람들이 3억 명이 조금 안 된대요. 2019년 코로나 이전보다 110% 늘었대요. 3년 동안 눌러놨던 여행과 이동에 대한 욕구가 폭발한 거죠.


제가 경항대운하 여행에서 첫 번째로 가려고 했던 곳이 항저우예요. 하필이면 전국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몰렸대요. 이런 곳을 선택한 저는 바보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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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우린먼부두武林门码头에서 시작된 경항대운하의 물길을 봤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저의 노동절 연휴의 남은 4일이 어떻게 꼬일지 몰랐어요. 우린먼부두에서 시작된 물길을 따라서 우시无锡까지 갔어요. 우시에서 대운하 뱃길을 느낄 수 있는 배를 타려고 했어요. 표 사는 것부터 배 타는 과정까지 기다림, 기다림이었어요. 그래도 배는 탔어요. 실제 운하길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양저우에 대운하 박물관이 있어요. 그곳에 7D로 대운하길을 가는 체험관이 있는데 실제로 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어요.

우시에서 쩐지앙 거쳐서 양저우에서 야무진 꿈을 접고 상해로 돌아오기로 했어요. 유명한 식당은 아예 예약도 안 받아서 문턱도 못 넘어봤어요. 어영부영하다가 쫄쫄 굶을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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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지앙镇江 시진두西津渡에 서서 장강을 바라봤어요.

항저우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물은 쩐지앙에서 장강을 만나게 되어요.

배에서 물건을 내려서 다시 장강을 건널 수 있은 배에 실어야 하는 고된 하역이 이뤄졌지만 무역과 상업의 번창도 이뤄졌어요. 이 시진두를 아편전쟁 때 영국군이 틀어막는 바람에 청나라 조정이 중국 100년 국치의 시작이 된 난징조약에 서명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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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아도 밥도 못 먹어도 상해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못 샀어도 물은 흐르고 있었어요.

물은 멈추지 않아요. 멈추면 물은 썩으니까요. 양저우에서 멈추었지만 항저우에서 시작해서 쑤저우, 쩐지장,양저우, 쉬저우, 지닝, 텐진을 거쳐서 베이징 통저우까지 흘렀던 경항대운하는 남쪽의 물자를 끊임없이 실고 북으로 갔어요. 장강을 만나고 운하로 가다가 다시 황하를 만나고 그 험한 강을 건너서 다시 북으로 가야 했던 쉽지 않던 길.. 그 길은 물의 길이었어요. 멈추지 않고 북에서 남에서 흘렀던 물이 그 길을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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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사는 우리들의 삶이 다시 멈추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3년 동안 갇혀있다 보니까 깜빡했어요. 원래 중국은 사람이 많았고 14억 인구가 노동절 연휴에 나들이 나올 거라는 것을… 쑤저우에서 상해까지 버스하고 지하철이라도 타고 와서 다행이에요.

배 타면 오면 나흘 걸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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