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만의 북경 나들이
지난해 상해 봉쇄 때 저는 북경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낯선 상해에서 봉쇄라는 상황이 버겁고 힘들었어요.
늘 그렇듯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6월 1일에 상해 봉쇄는 끝났고 저는 북경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1년 반 만에 북경으로 나들이 갔어요.
지인이 8월에 귀임을 한다네요. 북경에서 근무하다가 한국 복귀했다가 다시 2019년도에 북경으로 왔어요. 그때 기뻤어요. 저는 붙박이라서 계속 근무하는데 지인들은 대부분 주재원들이라서 임기 마치면 귀임하거든요. 북경에서 살면서 많은 이별을 했어요.
3년,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고 나누었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제 마음속에는 작은 멍이 들어요. 그렇게 멍들면서 수많은 이별을 했어요. 지인의 복귀는 반갑고 기뻤어요. 좋았던 시간도 잠시.. 지인은 2019년 11월부터 시작된 코비드 19로 인해서 3년 넘는 시간 동안 고생만 하다가 귀임하네요.
다른 지인이 북경으로 돌아왔어요. 2015년에 북경을 떠났다가 올해 다시 북경으로 귀임했어요. 돌아온 지인이 보고 싶고 반가웠어요.
저는 북경을 떠났지만 계속 북경에 계신 지인도 있어요.
떠나는 지인은 아쉽고 돌아온 지인은 반갑고 계속 있는 지인은 보고 싶어서 금요일 밤에 북경으로 갔어요.
오픈했을 때부터 다녔던 미장원에 갔어요.
중국 미장원들은 대부분 선불카드를 만들어야 할인을 받을 수 있어요. 계속 선불카드 충전해 가면서 다녔던 곳인데 잔액이 남아 있어서 갔어요. 남은 잔액 쓰고 머리 펌을 했어요.
그 옆에 제가 제일 좋아했던 발마사지집이 있어요.
오디 발마사지는 깨끗하고 서비스가 좋아서 예약을 해야만 발마사지를 할 수 있어요. 제가 살던 아파트 안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발마사지 받고 집까지 돌아가려면 귀찮다고 투털대면 저는 오디에서 마사지받고 집에 걸어갈 수 있는 `오디권`에 산다고 자랑했어요. 마사지받으러 가면 바로 잠이 들어요. 집 두고 왜 마사지 집 가서 자는지 몰라 그렇게 농담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마사지받곤 했어요.
제가 일요일 아침마다 장바구니 들고 장 보러 가던 차이시앤궈메이菜鲜果美예요.
유일하게 오프라인 쇼핑하던 곳이에요. 야채하고 과일도 신선하고 좋고 해산물도 다 손질해 줘요. 일요일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부스스한 얼굴로 가서 장바구니 가득 채워서 낑낑대면서 돌아오는 게 제 루틴이었어요.
미식의 천국이고 세상에서 맛나고 유명한 음식, 미슐랭 레스토랑 넘쳐나는 상해에서 제가 먹고 싶었던 것은 정일품 비빔밤이었어요. 나물을 이렇게 만들어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이 식당은 제가 북경에 왔던 2011년도에 있었어요. 그 긴 시간 동안 식당 주인이 한국인에서 중국인으로 바뀌었지만 변화가 40위안짜리 나물비빔밥 가격은 그대로네요.
중국의 신라호텔이라고 제가 말하던 누오호텔 NUO은 여전히 중국풍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예요. 아침에 뫼벤픽 아이스크림까지 주는 풍성한 조식을 지인과 폭풍 수다 떨면서 열심히 먹었어요.
벼 수확 늘리겠다고 해로운 참새를 잡았고 결국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비극을 불러왔던 대약진 운동의 대약진을 브랜드로 한 다웨맥주大跃啤酒Great leap brew에서 수제맥주 한잔 했어요. 기억하기도 싫을 대약진이라는 명사가 상표로 가능한 이 나라는 관대한 걸까요? 그 생각하면서도 왕징에서 가까워서 자주 갔었던 맥주집이에요.
십 년 동안 건너고 건너왔던 사거리예요.
멀리서부터 신호등 보면서 언제 파란 등으로 빨간 등으로 바뀔까 보면서 걸음속도 조절하면서 건너기 바빴어요. 그 사거리에서 멈춰 본 적이 없어요. 빨리 건너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그 사거리에 파란 등에 안 건너가고 멈춰봤어요. 이민호 님의 제대 후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한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 시간 병행 이론이 나와요. 같은 2023년이지만 한 곳에는 대한제국이 한 곳에는 대한민국이 공존하는 병행 이론.. 사거리에서 저는 시간 여행자가 되었어요. 2023년 5월인데 저는 상해와 북경이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을 넘어왔어요.
매일 아침 다다다 걸어서 출근한 곳이에요.
입점해 있는 건물이 리노베이션 한다고 해서 공사 소음, 먼지, 진동으로 고통받았고 위치 조정으로 내부 공사를 새로 해야 했고 다른 곳에 임시로 이사 갔다가 다시 이 자리로 오는 과정이 쉬웠을까요. 온통 페인트, 유해물질로 가득한 공사판 속에서 보냈던 힘들었던 시간의 무게도 시간이 흐르니 가벼워지네요.
처음 왕징에 와서 살았던 집이에요.
이사를 하자마자 바로 앞에 왕징 소호 SOHO가 공사를 시작했어요. 소호 땅 팔 때부터 살았다고 지금은 농담하지만 그때는 밤에 자면서 땅 파는 진동을 느껴야 했어요. 제가 중국에 사는 시간 동안 하루도 공사판을 보지 않고 공사 소음을 듣지 않는 날이 없었네요.
떠날 때까지 살았던 집이에요.
아파트는 오래되었지만 집주인이 살던 집이라서 인테리어가 잘 되어있는 빈 집이었어요. 좋은 집주인 만나서 5년 동안 잘 지냈어요. 물론 저도 벽에 지문 하나 안 묻게 깔끔하게 관리하고 살았어요.
시간과 공간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어요.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엇이 있는지는 다르겠죠. 주말 동안 저는 북경에서 2021년 10월에서 2023년 5월로 타임머신을 타고 갔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은 떠난 사람에게는 그리움이고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설렘이죠.
지인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북경남역으로 갔어요. 이제 상해로 돌아가야 해요.
아그네스 발사Agnes Balsa가 불렀던 그리스 민요
<기차는 8시에 떠나네>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카타리니로 가서 행복하게 살기로 했지만 조국을 버릴 수 없었던 연인은 끝내 오지 않았고 혼자서 탄 기차는 8시에 떠났고
북경에서 살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을 한 움큼 내려놓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할 상해로 가는 제가 탄 기차는 5시에 떠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