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는 원래 이랬을지 몰라요.
집을 나서서 푸른 나무 터널 아래로 걸을 때마다 위를 봐요. 상해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4 원소, 공기, 물, 불, 바람 말고 초록이라는 제5 원소가 있나 봐요. 어디 가나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있어 좋아요.
사람들도 많아요.
북경은 오환五环을 벗어나면 인구 밀도가 뚝 떨어져요. 상해는 외환外环을 벗어나도 인구밀도가 비슷해요. 동네마다 스타필드 시티정도의 쇼핑몰은 하나씩 있어요. 하남 스타필드 규모의 쇼핑몰은 한국으로 치면 동마다 하나씩 있어요.
2019년도 코로나 이전의 상해가 어땠는지 몰라요.
2021년에 상해로 왔으니까요. 원래 이렇게 상해는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북적이고 길이 막히는 곳이었을까요.
2023년 6월 1일, 상해 봉쇄가 풀린 지 1년이 되네요.
봉쇄가 풀리고도 `간헐적 봉쇄`, `위클리 락다운` 이런 식으로 봉쇄와 격리는 반복되었어요.
저는 지난해 12개월 중 3개월을 봉쇄와 격리로 보냈어요.
12월에 위드 코로나를 하면서 코로나 쓰나미가 중국을 쓸고 갔고 6개월이 지났어요.
요즘 코로나 양성자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저희 사무실에도 직원들이 순번처럼 돌아가면서 걸려요.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걸리셨는데요. 그날 아침에 아주머니와 저하고 대화를 했는데 저는 아직 괜찮아요. 예전처럼 전파 속도가 빠르지 않네요. 다시 걸린 직원들도 처음보다는 덜 아프다고 하네요.
지난해에 안 걸렸던 사람들도 이번에 걸렸어요.
어떤 분은 코로나 유행했던 3년 반 동안 안 걸리다가 이번에 걸렸어요. 전 인류가 다 걸려야 끝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네요.
끝까지 빠진 사람 없이 다 챙기는 열일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네요.
지난 3년 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의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화물신앙货物信仰,cargo cult을 믿는 사람들의 광기 어린 집단의식을 보는 듯했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일본군 부대들이 남태평양 일대 섬에 기지를 만들면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섬 원주민들에게 현대 문명의 이기들, C-레이션, 코카콜라, 허쉬 초콜릿 등
맛있고 편리한 서구 음식들과 라디오, 무전기 같은 물건들, 그들이 남기고 사회 인프라 시설, 항만, 막사, 오락시설, 비행장, 격납고 등의 시설들은 원주민들에게 충격이고 새롭고 놀라웠겠죠.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군들은 시설과 물자들을 남기고 떠났어요. 원주민들은 다시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물자를 주기 바랐어요. 그들이 다시 오게 하기 위해서 활주로, 관제탑 모형을 만들고 헤드셋 모형까지 만들어서 쓰고 하늘을 향해서 팔을 휘젓으면 그들이 다시 올 거라고 기다렸대요.
보다 못한 서양인들이 이건 신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단지 물자를 싣고 비행기가 온 것이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고 하네요. 기다린 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들은 오지 않는다고 하자 오히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2천 년 동안 기다리지 않았냐고 되물었다고 하네요.
이제 `화물신앙`이라는 말은 일반명사가 되어 인과 관계를 혼동한 맹목적 믿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요.
원주민들이 풍요로운 물자를 실은 비행기를 오길 바라면서 행했던 맹목적 의식과 믿음을 저는 3년 내내 제로코로나 정책을 했던 중국에서 봤어요.
2020년 봄, 중국은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코로나 초기 방역에 성공한 듯했어요.
인간이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달콤한 착각에 다른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를 하면서 희생과 혼란을 겪는 것을 비웃으면서 안전한 나라에 사는 것을 행복해하라고 했어요.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이겨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슬금슬금 다시 중국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중국은 화물신앙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초창기 때처럼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치면서 제로 코로나가 오기를 중얼중얼거렸어요.
제로 코로나는 오지 않았어요.
남태평양 원주민들은 지금도 화물기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중국은 이제 제로 코로나를 기다리지 않아요. 늦게라도 포기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3년 동안 제로 코로나 오라고 펼친 의식에 저 같은 외국인들도 끌려 나가야 했어요. 잘못된 믿음과 판단이 얼마나 큰 피해와 고통을 가지고 오는지 저는 봤어요.
지금까지 근, 현대사에서 집 안의 식기, 농기구 녹여 철을 만들겠다는 대약진 운동,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스스로 없애고 부셨던 문화 대혁명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책이나 다큐에서 볼 때마다 어떻게 `영구 없다` 같은 일이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제가 현대사에서 이런 사건을 겪게 될지는 우리 엄마도 모르셨겠죠.
우리가 어디에 기록을 남겨야 남을까요.
수많은 저장장치들이 있었지만 몇십 년은 고사하고 십 년도 제대로 가는 저장장치가 드물어요. 비디오, 카세트테이프, CD, DVD, 플로피 디스켓, 외장하드, USB에 이어 지금 클라우드에 저장하지만 과연 얼마나 유지와 보존이 가능할지는 너도 나도 몰라요.
우리는 돌, 결혼, 졸업, 입학 이런 기념일에 촬영했던 사진과 영상이 지금 어디 있는 지도 모르잖아요.
아이러니하게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저장장치가 돌에 새기는 거래요. 선사 시대의 일도 돌에 새긴 것은 지금도 남아 있잖아요.
우리가 중국에서 겪은 3년 동안의 일과 과정은 어디에 남겨야 할까요.
저는 석수처럼 끌과 정을 들고 땅땅 돌에 새겨놓고 싶어요.
다시 바보 짓 하지 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