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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Feb 19. 2024

<눈부시게 불완전한>을 읽고

Brilliant Imperfection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에 이은 소위 장애를 가진 작가가 쓴 책을 두 번째로 읽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책을 썼는데 이제 고작 두 번째 책을 읽다니 저도 엔간히 게으르거나 무심한 사람이에요. 두 번을 읽었어요. 처음에는 충격과 놀라움, 낯선 새로움에 어색해하면서요. 

두 번째 읽을 때는 일레이에게 공감하면서 같이 분노를 느끼고 억울했어요. 세상이 정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에게 가한 유, 무형의 규정과 폭력에.. 작가는 세상의 편견, 억압, 부당한 처우에 부서졌다, 흩어졌다 겨우 다시 가까스로 자신을 추슬러요 


작가 일라이 클레어는 1963년, 버몬트에 살고 있는 백인, 장애인, 젠더퀴어라고 해요.  만일 작가가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이었으면 마이너 3종세트가 되었을 거예요.  책 내용에도 자기가 백인이어도 약을 처방받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옮긴 이는 하은빈 님이에요. 작가가 쓴 글보다 옮긴 이가 쓴 글이 맘에 들어 다시 읽었어요. 본인이 장애인인권 동아리에서 활동해서 장애에 대한 이해력도 높지만 글 쓰는 자체가 수려해요. 쉽지 않은, 낯선 내용을 잘 풀어냈어요. 


옮긴 이는 

347 쪽에서 `거칠고 모호한 문장들은 편집자님의 크고 작은 수선을 거쳐 또렷하고 말쑥해졌다.`라고 해요. 저도 누가 이렇게 내 문장을 수선해 주면 좋겠어요. 부러워요. 

`박종주가 아니었다면 내가 줄줄 흘리고 온 반짝이는 조각들은 영영 구멍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은빈 님은 동료에게 이렇게 마음을  나타냈어요.  

`우`라는 지인에게 이렇게 말해요.

 ` 그토록 연약하고 아름다운 것을 그에게서 배워 이 책을 옮기는 데 썼다.` 고 

제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책은 모두 9장이에요.


1장. 치유라는 이데올로기-경련과 떨림 

2장. 치유라는 폭력-단풍나무

3장. 치유와 공모하는-돌

4장. 치유의 뉘앙스-소라껍데기

5장. 치유의 구조-소라게

6장. 치유가 작동하는 법-구르기

7장. 치유의 한가운데-배롱나무 

8장. 치유를 누비기-드랙퀸

9장. 치유의 영향-생존노트

10장. 치유의 약속-자전거 타기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이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 책의 키 워드. ‘뇌성마비`, ‘정신분열’, ‘젠더 정체성 장애’


우리가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인정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꼭 성性을 가져야 할까.. 꼭 남성이거나 여성이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일레이는 어머니가 난소종양을 가지고 있었고 간신히 의학의 힘으로 태어났으나 이미 뇌세포 일부가 망가져 있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지진아, 원숭이로 분류되면 세상의 편견, 무시, 때론 지나친 관심과 쓸데없는 애정을 받아요.


27쪽 자선단체들은 장애는 비극적인 것이고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한 쌍의 관념을 오랫동안 형성해 왔다. 

31쪽 극복이란 이상하고 당혹스러운 개념이다. 극복은 초월하는 것, 부인하는 것, 넘어서는 것, 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료도 크리스토퍼 리브처럼 돈 많고 유명한 사람이나 받는 거죠. 

80쪽 진단의 횡포는 특정 신념 체계가 빚어낸 도구이자 무기이다. 

83쪽 이상 Disorder -틀린 것, 망가진 것, 고쳐야 하는 것을 의미, 박멸해야 하는 생물학적 이상 증세 

87쪽 대가-감금, 추방, 격리, 통제, 폭행, 약물투여, 학대, 방치 

100쪽 일상을 합성호르몬에 의존해야 하는 삶에, 매 끼니마다 챙겨 먹는 화학물질로 유지되는 내 삶에 

139쪽 치유-수치심과 슬픔이 부채질한 환영 

172쪽 인공와우수술-청각장애인에게 무차별한 시술, 오르니 딜(수면병 치료제), 바니카(탈모제), 이익에 따른 감산과 생산, 사람 생명에 필요한 약물이어도 돈이 안되면 생산하지 않아요.

180쪽 캐리벅-정신박약이라는 이유로 단종수술 강요당한 장애인이에요. 

189쪽 1924년 버지니아주에서 인종순결법 Racial integrity Act이 있었다.

204쪽 케이스파일 속 숨겨진 진실-환자라고 규정하고 그들에게 위험한 존재, 망상형 분열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을까요 

206쪽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원숭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234쪽 단일재배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요. 옥수수, 콩, 밀, 소 등 기업식 생산의 단일재배는 수백 번의 박멸과 제거를 필요로 하고 이런 논리는 사람에게도 적용되죠.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단일성을 강요하죠. 

268쪽 애슐리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딸에게 단임, 성장저하수술을 시켜요. 이게 사랑이라 생각해요. 

281쪽 망가지기와 고쳐지기-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고쳐진다는 것은 수치와 고통을, 지루함과 두려움을 의미해요. 정상인들은 비정상인이라 규정한 사람들에게 의학이라는 흉기를 마구 휘두르죠. 

289쪽 일라이와 연인 새뮤얼이 떠난 여행에서 지나가면 만난 많은 사람들은 관심과 질문을 퍼부어요. 그것이 둘에게 어떤 상처와 쓰라림을 줄지도 모르면서요. 

293쪽 일라이는 우리의 거친 여성성을, 잘생긴 부치성을, 영광스러운 양성성을 끌어안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순간들이 흔하고 특별한 것 없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 


가장 작가의 마음을 잘 나타낸 표현이라 느껴져요. 


세상에 제가 모르고 있던 현실이 이렇게나 많았네요. 

장애로 인한 불편함, 아픔보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류로 더 많은 불편함과 아픔을 느끼고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해받고 판단받을 수도 필요도 없겠죠. 일레이 클레어가 50년 삶동안 느꼈던 힘듦과 아픔에 따듯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면서 324쪽 마지막 책장을 덮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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