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쓴 질병, 치료에 관한 내용이 아닌 책
의사가 썼지만 질병, 치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에 관한 책이다. 김승섭 님.. 소위 돈 안 되는 치료와 연구만 골라한 보기 드문 의사다. 의대정원 확대와 의료개혁으로 아침드라마보다 더한 막장드라마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영되는 요즘..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혼자 뚜벅뚜벅 걸어간 한 의사에 대한 존경심으로 읽다.
책은 300쪽, 하드커버로 제작했고 내용 위주, 깔끔한 편집으로 읽기 편하다.
총 4장
학폭으로 인한 남학생들의 정신적 상처, 시카고 폭염으로 취약계층 사망 증가, 루마니아 낙태 금지로 가난한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 가난이 몸에 새겨진다는 절약형질가설 내용이 크게 다가온다. 네덜란드 기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이 사건은 세계사에서도 접했던 내용이었다. 해부학에 사용된 카데바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였고 해부학에서 오류를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해부용 시신 부족하게 되면 수입해 오겠다는 보건복지부 차관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환경, 어떤 원인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도 없이 농수산물처럼 수입해 오겠다는 발언에 지은 이 김승섭 님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화학물질 사용으로 이득을 얻는 기업이 유해하지 않다는 점을 사전에 증명해야 하는 사전주의 Precautionary Priciple을 주장하는 지은이가
1장은 오토 노이라트 Otto Neurath의 말로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한국에서 해고는 정신적 사형이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원진레이온, 제일화학 이야기. 현대 산업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명분으로 가장 위험한 작업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의사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 전문직도 자기 일터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소방공무원은 특수성과 공익성이라는 명분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10년 된 세월호 이야기. 10.29 이태원 참사와 더불어 온 국민 트라우마로 남은 커다란 상처,
동성동본 불인정과 수술을 강요당하는 성소수자 이야기, 한국을 떠나면 나도 너도 소수자인데 우리는 대수라는 이유로 소수자들을 강제한다. 교도소 보건의사로 일한 지은 이는 재소자 건강문제도 다룬다. 남궁민 배우가 열연한 닥터 프리즈너가 생각난다. 교도소 보건의사가 가석방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역시 드라마 속에나 있고 현실에서 재소자 건강은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다. 지은 이는 말한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고
사회적 관계망, 총기규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공동체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 한마디로 지은이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의사라면 다 돈 잘 벌고 주말에 골프 치고 비싼 식당 가서 밥 먹고 명품 쇼핑하는 것 아니고 사회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 연구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의사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도 기록하고 분석해야 그 희생이 헛되지 않고 뒤에 올 사람들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