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양자공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뭔가를 얻기 위해서죠.
인간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아요. 이건 동물들도 식물들도 똑같죠. 책에서 즐거움을 얻거나 지식을 얻거나 새로운 사실을 얻거나 위로, 공감을 하죠.
책을 읽고 났는데 책을 읽기 전이나 읽고 난 후에도 아는 것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뭐 하러 이 책을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 문제가 있냐, 아니면 제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읽고 나서 이해가 안 되어도 괜찮다는 책이 있네요.
책을 읽고 났는데도 이해를 못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라는 김상욱 님의 <양자공부>
양자고문이라고 읽어도 될 만큼 읽으면서 머릿속이 지글, 복작, 부글거리는 책이에요.
분명 엄마 아빠 양쪽 유전을 받았을 텐데 한쪽으로만 머리가 발달해 문과 100%인 제게요.
이 책에서 수식 이런 것을 빼고요. 보고도 모르니까요.
인문학적 요소만 쏙쏙 골라 읽었어요. 푸바오가 대나무 속에서 당근만 찾아 먹듯요.
20세기 초 등장한 양자역학에 대해 기존 고전역학학자 반발이 세죠.
그중 불후의 천재라는 아인쉬타인이 있었고요. 아인쉬타인이 아니라는 데 감히 누구 아니라고 토를 달수 있었을까요? 과학도 인문학처럼 기성 세력과 신흥 세력의 다툼과 헤게모니 주권싸움이 있네요.
중첩, 관찰, 불확실성 이런 논리는 기존 고전역학자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오히려 이해하기 쉬웠어요. 뭐 기존에 알고 있는 게 없으니까요.
과학은 지금까지 0.00001도 틀리면 안 되고 늘 정확해야 하고 실현, 반복 가능해야 한다는데 양자역학은 관찰하기 전까지는 불확실하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있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으로 중첩이라는 상황이라는 인문학 냄새 폴폴 풍기는 논리네요.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단어도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과학은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데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거네요.
P 87-당신이 보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원자가 내는 빛이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올지 안 올진 분명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가상의 존재, 라플라스의 마녀가 있을까
P 130- 여러 번 측정하면 얼마가 나올지 확률은 알 수 있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측이다
P 143-양자역학은 인간이 가진 어떤 이론보다 정밀한 예측을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주는 확실성의 마술이다.
P 156-양자세계에서는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2개 구멍을 지날 수 있다. 두 인자가 전 우주적으로 얽혀 있거나 실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이 표현이 편하게 다가왔어요. 모든 것이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양자역학의 너그러움에 그럼 그렇지 하는 공감이 삐죽 어깨 위로 솟아올라요.
P 257 원자는 파동같이 행동한다. -드 브로이 공식
널빤지 사이에 갇힌 원자는 널빤지 사이에 갇힌 파동과 같이 행동한다.
에너지도 띄엄띄엄한 값만 허용된다.
읽고 나면 세 가지 느낌이 들어요.
이런 책을 쓰는 분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과 부러움
자연과학을 인문학 관점으로 이해해도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
양자역학을 이해 못 해도 되는구나 하는 편안함(파인만이 이해 못 해도 된다고 했어요.)
읽고 나면 두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어요.
저는 양자역학을 모른다는 것과 문과 100% 라는 것
다음 생에 태어나면 공대 언니로, 안 되면 공대 오빠하고 결혼이라고 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