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쓰푸 앱 사용하기
사냥과 채취로 생활하던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농경사회에서는 집단생활이 필수였죠. 집단에서 떨어지거나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죠. 혼자서는 농경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공동체 삶을 통해 생존했고 그 안에서 보호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몇 만년동안 그렇게 이어져 오던 인류는 불과 200년 만에 급격한 산업화, 기술화, 고도성장을 통해 집단적 삶에서 초개인 삶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집단을 통해야 얻어지던 안전, 보호, 도움이 이제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능해졌답니다. CCTV와 경보기로 안전을 지키고 긴급 호출 버튼으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힘 있고 기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이제 앱에서 가격 견적 보면서 받을 수 있어요. 저 같은 외국인도 중국 살면서 불편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산업화와 기술, IT, 모바일페이 발달 덕이랍니다.
저는 상하이에 사는 안나예요. 15년째 중국 살고 있어요. 지금 사는 집에 3년째 거주하고 있어요. 상하이는 중환, 외환을 기준으로 도시 구역이 나눠져요. 외환 안으로는 상하이 번호표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하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외환 안이나 밖이냐에 따라 집값이 달라진답니다.
외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은근 자부심 있대요. 저는 외국인이니 상관없지만요. 외환 도로가 바라보이는 저희 집은 시끄럽습니다. 창문 열어놓을 수 없는 것은 기본이고요. 잘 때도 고속도로 소음이 들려요. 소음 땜에 이사도 고민해 보고 온갖 방음 장치를 다해봤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창문 하나 더 추가했어요. 창문 추가하면서 방음을 위해 추가로 달아놓았던 두꺼운 커튼을 떼어냈더니 아침에 해 뜨면 햇살이 커튼을 뚫고 들어와요.
평일에는 잠을 좀 일찍 깨도 되는데요. 주말에는 늦잠 좀 자고 싶어요. 블라인드를 하나 추가하기로 했어요. 무슨 일을 하든, 블라인드를 하나 사려고 해도 상하이도 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해야 해요. 타오바오 앱에서 판매자에게 블라인드 주문한다고 치수를 물어보네요. 제가 잰 치수로 보내주니까 뭔가 맘에 안 드나 봐요. 치수 측정 동영상까지 보내주면 그렇게 하래요. 씩씩대면 시키는 대로 측정해서 보냈어요. 치수 틀려서 안 맞아도 내 돈 나가지, 자기 돈 나가냐.. 벽에 구멍 뚫지 않고 끼우는 스타일로 주문했더니 벽 재질은 어때야 하고 최소 창틀 면적은 얼마여야 하고 소재는 어때야 하고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속사포로 쏟아지는 중국어 대화.. 힘들어요. 아쉬운 사람이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다시 한번 참을성을 발휘하며 대화했어요.
주문한 지 이틀 만에 블라인드가 도착합니다. 블라인드는 왔는데 다는 게 문제예요. 맥가이버를 불러올 수도 없으니 완쓰푸万师傅에서 부르기로 했어요.
완쓰푸 앱(우리나라 숨고 비슷한데 주로 집안일 특화)에서 집안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자를 구할 수 있어요. 전등 교체, 하수구 박힘, 가구 조립부터 집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어요. 과거 농경사회 집단생활에서 해결해야 했던 일을 이제는 개인이 다 해결할 수 있는 초개인화 시대이네요. 블라인드를 달아달라고 주문을 냅니다. 창문 크기, 재질, 높이, 블라인드 소재, 설치 방식까지 입력해야 하는 데이터도 많기는 해요.
주문 내면 금방 하겠다는 사람들 나타납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고 사다리도 필요 없어 80위안 부른 사람으로 하기로 했어요. 아저씨가 와서 블라인드 포장 풀러 툭 끼더니 너무 간단했나 싶어 양쪽에 나사 2개 박으면 어떻겠냐고 하네요.
중국은 이사 나갈 때, 다 원상 복구해야 하니까 못 하나 박는 것도 집주인 허가받아야 하는데요. 이 블라인드는 제가 이사 나가도 두고 갈 거고 이사 올 사람도 필요할 테니 나사 박으라고 했어요. 10분도 안 돼 일 끝났어요. 블라인드를 쳐보니 치수 측정부터 주문, 사람 불러 다는 일까지 고생한 만큼 햇볕 차단 효과 있네요.
안나의 창에 햇볕 가리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답니다. 아무리 앱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도 직접 혼자서 다 하기란 쉽지는 않네요.
내일은 토요일.. 쿨쿨 늦잠 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