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작품 다 빠르게 읽을 수 있고 이해도 잘 되어요. 외국 작가 작품을 읽으면 시대 배경, 역사, 생활 풍습이 달라 와 닿은 속도와 깊이가 다른데 제가 오랜 시간 접하고 생활했던 중국 역사와 배경이라 쉽게 쏙쏙 잘 느껴져요. 위화 작가에 대해 따로 설명한 필요가 없죠. 1960년생, 항저우 출신이에요. 중국은 아무래도 남쪽 온화한 기후, 풍부한 물자와 외국과의 교류로 문화가 발달했어요. 문화하면 강남이고 강남 출신의 유명한 작가, 화가는 많아요. 위화 역시 항저우 출신다운 문학가로 필력을 보여주죠.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 근현대 역사에 휩쓸리며 엄청난 인생 변화속에서 고통을 겪어요.누구 하나 히어로 없고, 기적도 반전도 없이 그저 묵묵히 피동으로 역사를 겪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세 소설 모두 등장인물들 캐릭터 변화가 없어요.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 참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마저 느껴져요. 세 소설 모두 남자의 시각에서 쓴 소설이에요. 원청의 2부는 샤오메이 입장에서 전개하지만 역시 화자는 남자죠.
인생에서는 아들 유칭을 과다수혈로 잃어요.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피가 주요 소재가 되고 윈청에서는 피흘리는 잔혹한 죽음 이야기가 이어져요. 피는 인간은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매체로 집요하게 삶을 이야기해요.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66 연못물은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듯 소의 검은 등뼈를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67 나이를 개 몸뚱어리로 먹었냐
169 논의 벼가 다 흐물흐물해지고 말았지
185 그 쌀 한줌이 아까웠던 거야
239 펑샤는 매일 마오 주석의 말씀 위에서 잠을 잤던 거야
257 검고 큼지막한 두 그림자가 하나는 눕고, 다른 하나는 꿇어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어
276 둔한 새가 먼저 날아야 한다는 건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지
한마디 느낌
삶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아플 수 있을까
<허삼관 매혈기>
이야기 전개가 솔직해서 놀랄 정도예요. 주인공 허삼관과 허옥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가족으로 연을 놓지 않아요. 문화 대혁명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해야 하는 사회를 살아요. 아내 허옥란을 아들들이 비난을 해야 하는 장면, 매혈이라는 가장 간단하면서 환금성 좋았던 수단은 처음에는 달달했지만 나중에 허삼관을 죽음 근처까지 몰고 가는 독약이 되어요. 처음에는 위화 작품 중 이렇게 경쾌하고 밝은 작품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중간 문화대혁명을 겪으면 삶은 참담하고 혹독해지죠.
위화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
<허삼관 매혈기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121 삶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하는 거 봤냐
125 한 달동안 똥을 안 싸는 것보다 더 난리일 거야
224 새로운 사회에 태어나 붉은 깃발 아래서 자랐는데, 너희야 너무 결백하잖아
245 좋은 쇠는 칼날에 써야 한다는 거
한마디 느낌
허삼관, 그래도 인생 잘 살았다
<원청>
린상푸 시점과 샤오메이 시점에서 1부,2부로 나눠져 있어요.
여자 주인공 시점에서 쓴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린샹푸 시점에서 석연치 않았던 부분들을 샤오메이 시점에서 보면서 엉켜있던 것들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구도이기도 하고요. 3편 소설 중 가장 분량이 길어요. 1부에선 샤오메이를 찾아나선 린샹푸 삶과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젖을 얻어먹고 자란 바이자의 이야기, 시진에서 정착 생활을 하며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천융량과 우정, 서로를 위한 죽음, 2부는 샤오메이가 민며느리로 갔다 친정집에 돈을 준 이유로 쫓겨나 남편 아청과 정처없이 떠돌다 상하이를 거쳐 시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려요. 1부에서 엉겼던 실타래가 풀리면서 샤오메이에 대한 아련한 연민을 느끼게 해요.
<원청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44 피가 우박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색이 점점 옅어졌다.
250 민국 대통령이 주마등처럼 계속 바뀌니 천하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군요
306 그렇게 기름기가 쏙 빠진 마을을
360 249인의 묘
477 죽은 듯 고요하던 그들의 삶이 시리촌을 떠나 선뎬으로 가는 대나무 지붕 배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상하이에서는 인력거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546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553 가슴속에서 슬픔이 냇물처럼 흐르고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가냘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581 생전에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설립을 겪었던 그녀는 죽어서 군벌의 혼전과 토비의 난무를 피하고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한마디 느낌
우리가 사는 곳이 원청, 잃어버린 도시가 아닐까
세 권 책을 읽으며 계속 중국 근현대사 속에 살은 느낌이에요. 항상 책, 사진, 다큐에서 보던 중국 근현대사 국공내전,토비,대약진 운동 속 토지개혁,인민공사,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끊이지 않았던 사건은 평범한 사람들 삶을 처참히 망가뜨리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속이고 죽이고 죽여야 하는 참담함까지 얹어주죠. 그 안에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살아남고 사랑한다는 것이에요.
위화작가가 원청 속편도 쓰신다고 했는데요. 아저씨(?)들 관점이 아닌 린상푸 딸, 천용량 아들 시점으로 다양하게 중국 현대 이야기를 써 주셨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 중이에요. 지금까지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했는데 위화 님 작품 읽고 나니 저도 한번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목은 정해 놨어요.궁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