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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밤, 눈물

유채꽃밭 퇴근길

by 안나


지난주에는 반팔도 덥다 할 정도로 후끈했던 상하이 날씨, 이번 주는 파카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합니다. 하루 사이에 기온 십도 이상 화끈하게 차이나는 상하이 날씨에도 꽃은 잘 자랍니다. 금요일 밤, 불금이라는 금요일 저녁, 운동을 갔어요.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제가 좋아하는 수업이 있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꼭 가요. 퇴근 후 최우선 순위는 운동이에요. 남들은 좀 편하게 쉬고 노는 금요일 밤에 운동하러 가면 좀 쓸쓸할 때도 있지만 제가 안 가면 수업이 취소되니 가야죠. 운동 안 한다고 KPI 감점되는 것도 아니고 운동했다고 인센티브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2시간 열심히 덤벨질 Body pump, 주먹질 Body combat 하고 퇴근해요. 아침에는 출근 시간 맞춰 걷느라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하며 빠르게 파워워킹으로 다다다 걸어갔던 민항문화공원길을 천천히 느리게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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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시간에는 제 어깨 정도 높이였던 유채꽃이 퇴근길에는 어느새 자라 귓가를 스치네요. 한나절 만에 반뼘만큼 자란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밤길이에요.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유채꽃은 봄이면 당연히 피는 흔한 봄꽃이었는데 <폭싹, 속았어요>를 보면서 유채꽃밭아 관식과 애순의 사랑과 눈물, 제주도 도동리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또 하나의 바다같이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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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폭싹,속았수다> 4부가 하는 날이지.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보다가 자야겠다는 생각 하며 집으로 왔어요. 주섬주섬 정리하고 보기 시작했어요. 4부 보다가 자야겠다는 제 순진한 생각은 2시까지 기어이 4부를 다 보는 무모한 행동으로 바뀌었어요. <폭싹, 속았수다.> 1,2,3부를 보며 지금까지 흘리지 않았던 눈물은 4부에 흘리려고 모아놨나 봐요. 관식을 보면 마치 아버지를 보는 듯했어요. 관식과 애순은 우리 모두의 부모 이야기죠. 관식의 투병 생활과 끝내 세상을 떠나는 장면과 장례,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리움은 이 드라마를 보는 제 눈물샘을 열고 바다가 되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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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한국에 갈 수 없었어요. 해외 입국자 3주 격리라는 분단선 때문에 삼팔선도 아닌 데 국경을 넘지 못했어요..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사람들이 우느라 폭싹 삭았다는 거래요. 등장인물 누구 하나 지나치지 않고 다 챙기는 알뜰한 드라마이자 사람이 사는 것과 행복은 파텍필립 노틸러스나 마이바흐 차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잡은 두 손에 있다는 평범한 사랑과 행복을 절절이 일깨워준 드라마, 관식의 굵은 마디 검게 그을린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었습니다.


금요일 퇴근길, 아침에 출근할 때는 어깨에 닿았고 퇴근길에 귓가를 스칠 만큼 자란 유채꽃밭 퇴근길은 이미 눈물이 예고된 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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