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사진관〉(Dead to Rights)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감독이었습니다. 감독 선아오(申奥, 1986~)는 80허우(80后) 세대라고 불리지만, 39세 젊은 감독입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조선족 출신 감독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 난징대학살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팔을 살짝 안으로 굽히고 봤어요.
상하이에 와서 처음으로 일반 영화관에 가 봤어요. 티켓은 키오스크에서 직접 출력하거나 예약 후 QR코드로 입장하는데, 상영 10분 전쯤 QR을 찍고 들어갑니다. 안내나 티켓 검사 직원도 없어, 무인 영화관에 간 기분이에요.
CG는 상당히 자연스러워 “아, 저건 CG다”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어요. 음향과 색감 역시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네요. 대사는 중국어 약 50%, 일본어 30%, 나머지 20%는 난징 사투리예요. 자막은 영어와 중국어가 동시에 나와 눈이 분주했어요. 러닝타임은 약 2시간 20분으로 길어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으려다 보니 다소 과식한 듯한 느낌이 있었죠. 편집자의 눈으로 본다면 과감히 30~40%는 덜어내도 더 탄탄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편집했으면 가위질 소리 요란했을 거예요.
영화는 잘 알려진 난징대학살을 배경으로 합니다. 1937년, 상하이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은 난징으로 진격해 무차별 보복을 시작합니다. 불과 6주 동안 민간인 30만 명 이상이 참혹하게 학살당합니다. 주인공 쑤류창은 총격을 피해 달아나다가 우연히 사진 기술자로 오해받아, ‘아창’이라는 가명으로 길상사진관에 몸을 숨깁니다. 그곳에는 이미 원래 주인 왕요 가족이 숨어 있고 일본에 협력하던 통역 왕광하이는 내연녀 린위슈를 아창의 아내로 속여 함께 지내게 해요. 가짜 사진관 직원, 가짜 부인, 진짜 가족이 뒤엉켜 기묘한 동거를 이어갑니다. 사진관 밖에서는 학살, 약탈, 강간이 끊이지 않고, 천년 수도 난징은 피와 절규로 물들어 가요.
이 영화의 중요한 장치가 바로 통행증입니다. 두 차례 등장하는 통행증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트리거가 되어요. 아창이 빼낸 사진은 일본군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전범재판에서 일본군이 증거 없다고 발뺌하자, 사진이 사형을 구형하는 무기가 되고, 사형집행장 총성과 동시에 린위슈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 ‘역사를 기록’합니다. 영화는 현재 난징의 풍경과 과거의 남경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올해는 한국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회에서 ‘항일(抗日, 캉르)’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가 ‘엄마, 아빠’이고 그다음이 ‘캉르’일 것 같을 정도예요. 수십 개 TV 채널 어디를 돌려도 캉르 관련 프로그램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뼛속까지 항일 서사를 새겨 넣은 중국이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그 기억을 확인하는 듯했습니다.
한국인으로 본 〈남경사진관〉
한국인의 시선에서 볼 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하게 긴 설명(예: 사진 인화 과정 묘사), 일본인 사진병 이토의 비중이 과도하게 늘어난 부분은 흐름을 끊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국뽕은 한 국자 아니고 한 숟가락 정도 들어가서 그 정도면 과하지 않았어요. 남자 주인공 연기력이 다소 부족해 대작을 끌어가기에는 힘이 부쳐요. 사진관 주인 역과 여배우 역 배우 연기가 묵직하게 극을 받쳐 주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계속 드는 생각,
“왜 인간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짓밟을 권리는 없어요.
사진은 ‘피할 수 없는 증거’로 남아, 그것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