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닥터 앱을 위한 헌정
“사과*야, 자니?”
“아니.”
“왜?”
“안나 님이 집 앞에서 나를 보더니 ‘어, 8,000보가 안 되었네?’ 하시더니, 아파트 1층에서 30층까지 걸어서 올라갔지 뭐야. 그나마 30층쯤에서 8,000보를 채워 그제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왔어. 아니었으면 나, 50층까지 올라갈 뻔했지. 그러니 지금 숨이 차서 잠이 올 리가 있겠어. 심장이 아직 콩닥콩닥해.”
“에휴, 사과 너도 힘들구나.”
“은하수**야, 너는 왜 안 자?”
“말도 마. 카일 님이 오늘은 하루 종일 회사 안에서 있었는지, 걸음 수가 8,000보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이 양반이 그냥 집에 갈 리가 없는데’ 했는데, 퇴근하면서 지하철 타고 나를 보더니 8,000보 안 됐다고 지하철 안에서 맨 앞 칸에서 뒷 칸까지 왕복을 하잖아. 몇 번을 했는지 어지럽네. 다행히 8,000보 채워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 오늘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뛰어올 뻔했어.”
“그렇지. 안나 님이나 카일 님이나 진짜 하루에 8,000보 안 채우면 어떻게든 채우니, 우리가 쉴 시간이 있겠어?”
“전에 말이야, 나는 분명히 8,000보 걸었는데 손목닥터 앱에서 무려 16,271,941보, 9,763km를 걸었다고 나온 거야.
안나 님이 보더니 계산해 보셨더라니까. ‘9,763km면 한국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걸어가면 되네.’ 이게 오류라서 다행이지, 정말로 마드리드까지 걸어가는 줄 알았잖아. 하긴, 지금까지 우리가 걸은 거리 다 합치면 마드리드까진 못 가도 중앙아시아쯤은 갔을 걸?”
“사과 너도 고생이 많구나.”
“그래도 가끔 안나 님하고 카일 님이 열심히 모은 서울페이로 가락시장 가서 회 사가지고 와,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함께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 소상공인 위주로 사용해야 한다고 시장 가서 쓰는 것도 보기 좋고.”
“사과야, 근데 말이야. 가락시장에서 집까지 또 걸어오는 건 생각 안 하니?”
“하긴 그러네. 집에 차 놔두고 굳이 걸어갔다 오니”
“너나 나나, 손목닥터 앱이 있는 한 쉬기는 글렀어.”
“그래도 걷는 것 좋잖아.”
“그러니 하루도 안 쉬고 걷잖아. 8,000보 안 되는 날도 하루쯤 슬그머니 넘어가면 좋은데 그런 땡땡이는 우리 사전에 없나 봐”
“그래, 이제 자자. 23시 59분 59초 넘으면 오늘 걸음 다 리셋되잖아.”
“우리 내일 또 만나.”
“그래.”
도로롱도로롱
드르렁드르렁
그렇게 사과와 은하수는 오늘 8,000보 걸음을 마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코~ 깊은 잠에 빠졌답니다.
* 사과: 안나의 스마트 워치
** 은하수: 카일의 스마트 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