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목적
시험공부하기 싫다.
- 시험기간인 대학생 -
이번주 목요일부터 21일까지 시험이 있다. 3학년 2학기를 마무리 짓는 시험이고 이 시험이 끝나면 나는 4학년이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간고사를 보지 않고 기말고사만 보는 과목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시험을 잘봐야하지만 나는 공부가 하기 싫다. 14주 동안 영상을 틀고 놀은 내 잘못이 제일 크지만 난 시험공부하기 싫다. 그래서 오늘은 시험에 대한 글을 써보려한다. 시험기간에 딴 짓을 하는건 너무 짜릿하고 재밌다.
우리 모두는 시험을 잘보고 싶어한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필기를 하며, 열심히 공부한다. 시험기간동안 공부하는 것은 한약처럼 쓰지만 시험이 끝나고 그 결과가 좋으면 그것은 설탕보다 달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달콤한 결과를 위해서 길고 쓴 시간을 인내한다.
우리는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거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담론에 세뇌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듣는 말중 하나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대학 가라'와 '대학교 가서 실컷 놀아라'일 것이다. 마치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거라는 듯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 일부 반항적인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공부를 잘해야 돈을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돈이 너무 많거나 숨만 쉬어도 행복한 낙관적인 사람도 공부를 해야할까? 그들은 있는 그대로 미래가 보장된 행복한 삶을 사는데 굳이 공부를 해야 할까?
혹시 수능이나 시험을 의심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고등학생때 부터 시험에 대한 고민을 해본 것 같다. 시험의 순수한 목적은 응시자가 시험범위의 내용을 얼마나 아는지 확인 하는 것이다. 응시자는 시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위해서 출제자가 정해놓은 범위에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내놓아야한다. 그렇다면 출제자는 시험결과를 인질로 응시자가 자신이 원하는 성향으로 공부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사탐, 과탐 혹은 국영수는 대학에 가면 전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국어국문과에 가서 수학을 중요하게 공부할 일이 있을까? 아니면 수학과에 가서 고전문학을 깊게 다룰까?수능때 공부한 개념들은 대학에 가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그것들을 못한다고 대학에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필요없는 과목들을 공부하게 하고, 완전히 다른 내용을 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할까?
나는 응시자의 인내심의 정도, 간절함을 알 수 있는 척도로 점수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자신이 얼마나 그 학교에 지원하고싶은지 간절함을 수능점수로써 표현하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공부도 이 정도로 인내하고 공부했는데 원하는 전공은 얼마나 잘하겠습니까?"라고 대학교 측에 호소하는 것 같다. 결국 입학사정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고통을 인내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우리가 알고 배우는 것들이 무조건 올바를까?혹시 사회가 원하는대로 세뇌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강의나 수업으로 윗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겠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라고 알았다. 학교에서는 1년에 몇번씩 물부족과 관련된 백일장이 열렸고, 수돗가와 길거리에 물부족과 관련된 포스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국가적 선동이었던 것이다. 십수년 동안 알아온 담론이 알고보니 구라였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사람들은 바로 믿을까? 일단 부정하고 볼 것이다.
광우병도 대국민 선동에서 빼놓을 수 없다. 광우병에 대한 괴소문이 돌때 아무도 그것이 구라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을 하면 "너 광우병걸린 소고기 먹어봐"라는 식의 말만 들을 뿐이었다. 하지만 근거도 없는 사기였다.
인간은 같은 지식을 공유하면 동일자로 간주하여 자기편으로 인식하고, 다른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의 신빙성이나 진실여부 상관 없이 타자로 간주한다. 그래서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다. 그 결과 소수의 지도층이 다수의 대중을 선동하고, 선동당한 대중은 선동당한지도 모른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과 같게 만드려고 한다. 교육이나 교화(敎化)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 사회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타자들을 동일자화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