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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Aug 25. 2023

칸트, 니체 그리고 푸코

Kant, Nietzsche et Foucault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푸코로 철학에 입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니체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며, 푸코 사유와의 어떤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은 거라 볼 수도 없다. 그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푸코가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푸코와 니체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칸트와 푸코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칸트는 서양철학의 호수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다. 칸트 이후의 철학은 모두 칸트에게서 나온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푸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덕적 형식주의로 유명한 칸트가 푸코에게 영향을 줬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논문을 몇 개 보다 보니 푸코가 칸트의 영향을 받았음을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되었다. 


푸코와 니체

  푸코의 연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국가박사학위인『광기의 역사』(1961)부터 『담론의 질서』(1971)까지를 '지식의 고고학' 시기로, 『담론의 질서』이후부터 『성의 역사1 : 지식의 의지』(1976)까지를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로, 그리고 지식의 의지 이후부터 그가 사망한 해(1984)를 '윤리의 계보학' 혹은 '주체의 윤리학' 시기라고 부른다. 중기(권력의 계보학)과 후기(윤리의 계보학) 시기의 푸코에게선 니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초기인 지식의 고고학 시기의 푸코에게서도 니체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고학 시기의 푸코에게 니체는 계보학 시기처럼 활용되고, 응용되는 철학자가 아니라, 그저 인용되는 철학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칸트는?


푸코와 칸트

  칸트는 고고학 시기의 푸코에게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말과 사물』(1966)에서. 말과 사물은 모닝빵처럼 많이 팔린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렇게 어렵고, 난해한 책이 어떻게 그렇게 잘 팔렸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푸코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이 책은 아주 중요하다. 나도 처음에 저 책을 읽을 때는 너무 난해해서 곤욕을 겪었다. 말과 사물에서 칸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선 우선 칸트에 대해 먼저 다뤄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칸트라는 철학자의 이름을 들으면 뭐가 먼저 생각나는가? 정언명령? 도덕적 형식주의? 나는 "transzendental"이 먼저 생각난다. 이 용어의 번역에 대해선 논란이 많은데 나는 '선험적'이라고 사용하겠다. 칸트의 선험철학의 핵심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에 앞 써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특히 이러한 사유를 접할 수 있다. 칸트 이전에는 철학이 두 계파로 나뉘었다.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영미철학의 경험주의 그리고 이성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대륙철학의 합리주의로 크게 나뉘었다. 하지만 칸트는 이 둘을 모두 받아들여서, 그들을 통합했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을 통해서 감각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지성을 통해서 그 감각들을 정리해서 이성에 전달해 인식을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모두 받아들이고, 두 사상의 교차점이 되었다. 


  그래서 칸트는 결국 보편적 지식 혹은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제 해있는 '아프리오리'로 인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코는 이에 반대했다. 푸코는 그 아르키메데스의 점 즉, 보편적 지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때 역사적 선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사와 선험은 공존할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니다. 서로 모순이 된다. '나는 밥을 안 먹어서 배가 부르다'라는 문장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푸코는 이런 말장난을 했을까? 


  푸코는 보편적 인식, 지식 혹은 담론이 각 시대별 인식론적 장(epistemological field)이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라 보고, 이러한 장(field)은 영원히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단절을 겪음으로써 지식과 인식에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르네상스부터 1966년까지 서구 유럽의 역사에서 두 번의 단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서구 유럽의 역사를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대, 근대 그렇게 셋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두 번의 단절을 찾는 매개로 그는 문헌학, 정치경제학, 생물학을 이용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푸코는 칸트가 근대의 시작을 알린 철학자라고 간주했다는 것이다. 칸트는 무한이 긍정되고, 유한이 부정되던 시기에 유한과 무한의 지위를 그의 인간학을 통해 역전시켰다.  또한 푸코는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인간은 근대에 등장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한다. 자세한 건 말과 사물을 직접 정독하길.


  그래서 말과 사물의 문제의식 혹은 목표가 무엇이냐? 그것은 근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푸코는 칸트를 참 좋아한 철학자다. 하지만 그는 말과 사물을 통해서 칸트를 죽인다. 하지만 직접 죽이지 않고, 니체를 통해서 죽인다. 푸코는 자신의 고고학적 방법론을 형성할 때 칸트에게 큰 빚을 졌지만, 그는 칸트의 시대를 끝내려 한다. 


  결국 푸코는 칸트의 보편적 인간이 그저 역사적으로 조합된 하나의 구성물에 불과한 것임을 밝히고, 그것이 주장하는 객관성, 절대성, 필연성 및 보편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그와는 다른 '무수한 일반성의 형식들'을 가능케 하고자 한 것이다. (허경, '푸코, 칸트, 니체' 참고)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그는 근대를 끝내고, 자기의 변형을 가능하게 하기를 원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지만, 결국 푸코의 문제의식은 항상 주체이자 자기(moi)였다. 그는 칸트의 선험적이고, 보편적임을 주장하는 인간학을 끝내고, 니체의 위버멘쉬를 통해서 '자기' 혹은 '주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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