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조건

condition of love

by 오경수
Egon Schiele(1890-1917) - 「Lovers」(1914)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감정으로부터의 도피? 아니면 그로 인한 결여를 채우기 위한 대책?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은 원래 머리 둘, 팔 넷, 다리 넷이 한 몸뚱이에 있었으나 신에 의해 육체가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처럼 팔다리 각각 두 개에 머리 하나인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온전한 존재였던 인간이 둘로 나뉘어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짝을 찾아 나서는 게 그것이 사랑이라더라.


사랑에 조건이 있을까. 만약 조건이 존재한다면 그 조건에 충족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탈락인가? 그렇다면 과연 그 조건과 분별을 우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고 가정하자. 긴 생머리와 무쌍의 눈이 아름답다. 나는 그녀의 용모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긴 머리를 자르고 숏컷을 했으며, 눈은 압구정에서 쌍수를 해왔다. 그녀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외적 양태가 많이 변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가시계에 살고, 이 세계를 지평으로 존재하는 나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 더 이상 그녀가 나의 염원의 대상이 아니다. 더 이상 그녀의 용모는 나에게 설렘을 주지 않는다. 더 이상 나의 그녀가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범인일 뿐.

두 번째.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어울린다. 예전의 그녀가 더 이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녀인 건 마찬가지.


아마 대부분 첫 번째보다 두 번째를 진짜 사랑이라고 혹은 진심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첫 번째가 사랑이 아니라고 우린 단언할 수 있을까. 첫눈에 반하는 금사빠는 사랑이라고 취급하면서 왜 외모를 보고 사랑한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할까. 외모에 의한 사랑도 우린 사랑으로 분류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다 맞혀야 시험에 합격하는 게 아니듯이. 커트라인을 넘으면 우린 몇 문제를 틀리던지 합격이다.

사람마다 타인을 볼 때 가치평가하는 할당률이 다르다. 총점의 50%가 외모인 사람도 있고, 혹은 그 이상이거나 그 이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외모를 아예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격이 1순위고, 누군가는 경제관념이 제일 중요하다.


앞의 예시처럼 내가 그에게서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고 마음을 준 이유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나의 신에게 버림받은 느낌일까?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결여를 상쇄해서 나의 마음을 굳건히 잡아줄까?


만약 어느 이유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사라지거나 퇴색되었을 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가 아니라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속물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플라톤 같은 현자가 아니라서 본질과 양태를 온전히 구분하고 걸러내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현존재이기에 그 이 죄목은 정상참작된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은 그의 외모, 지위, 재산과 같은 지표 혹은 양태가 아니라 그의 본질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가지계적 애정은 바벨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에 우린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냥 그가 좋을 뿐. 따라서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이유를 혹은 그 이유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속물적이고, 낭만이 퇴색된 현시대에 그렇지 않은 사랑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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