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인가 싶은 순간
나는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전공을 알면 취업 걱정은 없겠다고 한다. 실제로 전기공학은 취업이 잘되는 전공들 중에 하나라서 '취업 깡패'라고도 불린다. 그렇지만 나는 내 전공이 마음에 안 들어서 벗어나고 싶다. 정해진 대로만 해야 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기라는 에너지를 난 공부하기 싫다. 우리 아버지께서 전기공사 일을 하셔서 나는 전기공사가 낯설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아빠 출장에 따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큰 사고를 가족이 겪는 것을 몇 번 접한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내 무의식에 떠 다니는지 나는 전기공학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가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왜 전기공학을 선택했냐고? 재수할 때, 나도 나를 몰라서 전기공학을 선택했다.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보단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 하나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전기공학과에 지원했다.
고등학교 2학년 12월에 나는 기타 전공으로 실용음악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왜 기타 전공을 골랐냐면 나는 그 당시에 기타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성적은 애매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보단 오늘 뭐하면서 야자를 버티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도 주체적으로 알아서 하지 않고 선생님이 시키는 숙제만 했다. 그래서 공부를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진짜 애매한 학생이었다. 그런 내 인생에 게임 말고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본 것이 기타였다. 연주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지고 나름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 노력했다.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완주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정말로 엄청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목표를 수립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기타 연주로 성취감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것이다. 만약 이 성취를 학업에서 얻었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과 정말 다를지도 모른다.
성취라는 엄청난 쾌락을 맛본 나는 더 어려운 곡들을 연습하고 그로 인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래서 기타 연주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러셨는데, 그 심정이 나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는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닐까?
결국 나는 입시를 준비한 지 1년 만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다. 하지만 21살에 나는 개인 사정으로 휴학을 했다. 그리고 방황을 하다가 결국 음악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자퇴하고 재수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다시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대학을 다시 가기보단 군대 갔다 와서 취직을 바로 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매일 혼자 도서관에 가서 재수를 준비했다. 재수 기간에는 아버지와 말을 별로 안 한 것 같다. 하지만 거점 국립대 전기공학과에 합격하니 부모님은 저번 입시결과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다. 이름을 들으면 웬만해서는 다 아는 대학이고, 취업 잘되는 전공이니 좋아하실만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련된 전공이니 더더욱 좋아하셨다.
성적은 잘 나오지만 나는 내 전공에 정이 가지 않았다. 남들은 내가 전공을 살려서 취직을 좋은 곳에 할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 나는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전과를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전과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전공이나 살려서 잘 먹고 잘살자는 마인드로 살고 있었다.
3학년에 복학을 하고 자주 어울리던 형이 내게 독서를 권했다. 독서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친한 형이 권해서 한번 시도해 보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게 되었다. 책을 완독 할 때마다 얻는 카타르시스는 기타에서 얻은 것 이상이었다. 음악은 예술일 뿐이지만, 지식은 나를 발전시키고, 자극했다. 그래서 독서에 빠지고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독서를 많이 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을 많이 하니 영감을 많이 얻었다. 나는 그 영감들을 정리하고 발전시키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가시적 결과물 자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내가 뭔가를 써냈다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작가와 같은 예술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독서와 글쓰기를 나눌 누군가도 내겐 필요했다. 그래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학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서 인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대화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교수님께서는 극찬을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극찬을 받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로 삼고 싶어졌다. 하지만 전에 기타를 시작하고 포기한 것처럼 인문학도 그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마음 어딘가에 있다. 내가 다시 한번 전공을 바꿔도 될까? 또 다른 게 하고 싶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들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는 철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지원했다. 인생 어차피 한번 사는 건데, 원하는 거 공부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또다시 부모님을 설득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철학과는 다른 캠퍼스에 있어서 나는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설득을 했는데 아버지가 문제였다. 내가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것을 좋아하는고 기대를 크게 가지는데 어떻게 진로를 설득시킬지 너무 걱정이 컸다.
그래서 내 생각과 계획 그리고 내 글과 여러 피드백들을 첨부해서 ppt를 만들어서 아버지 앞에서 발표를 했다. 긴장을 해서 계획한 것만큼 잘하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내 생각을 전달하고 설득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결국 얻어낸 대답은 "너 알아서 해라"였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이 모습을 본 어머니도 한숨을 쉬며 걱정 어린 표정을 하셨다. 당분간 집에 냉전이 올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해서 한편으로는 후련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선택을 하는지, 왜 좋아하거나 원하는 전공을 두 번이나 그만두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부모님께 죄송하는 마음이 크다. 두 번째 선택도 결국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세 번째 선택을 하니까 내가 부적응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 집안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왜 남들처럼 하나를 인내하며 결실을 보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른다. 세상엔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나는 그중에 아주 미시적인 부분의 것들만 접하기에 내가 이 세상에서 정말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칭하는 내 인생의 세 번째 변화가 마지막 전환이라고 나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알기 때문이고, 동시에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