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 운명론 그리고 자유의지와 실존주의
내가 야산에서 버섯을 먹고 죽었다면 그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내가 죽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버섯을 먹었기 때문에 죽은 것 일까? 전자는 운명론적 관점이고, 후자는 결정론적 관점으로 내 죽음을 바라본 것이다. 운명론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미리 다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고, 결정론은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뭐가 옳고 그른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판단이 불가한 것 같다. 결정론적 관점으로 본 것처럼 버섯이 사인(死因)이 될 수도 있고, 버섯을 먹은 순간 원인불명의 심장마비가 일어난 것이 사인이 될 수도 있고,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가 나를 사후세계로 데려간 것일 수도 있는 등 수많은 원인들로 사고 실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감각질로 감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하여 시체를 부검한다면, 부검은 인간의 이성 혹은 과학의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감식반은 사인을 버섯으로 추정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언어에 갇힌 것처럼, 감식반은 기존 지식에 갇힌 상태로 부검을 할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나오는 '계시'와 같은 사건이 일어지 않는 이상,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우리는 증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운명론자들의 주장처럼 세상 모든 일은 정해져 있을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과거에 이미 정해진 일이었고, 이 글의 좋아요 수도 미리 정해져 있었다면 우리는 그냥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 모든 사건이 정해져 있다면, 뭐든 열심히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오후 2시 강의가 휴강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면 학생들은 그날 제출해야 했던 과제를 굳이 학교에 가져올 필요가 없지 않을까? 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신이 정해놓은 내 운명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번에는 반대로 결과론자들의 주장처럼 세상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는 형이 보내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서이다. 그렇다면 그 형이 사진을 보낸 이유 또한 있을 것이고,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다. 태초의 원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그 태초의 원인 또한 다른 원인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태초의 원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결과론 또한 운명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으로 정복할 수 없는 주장인 것 같다.
나는 결정론과 운명론보다 자유의지와 실존주의를 삶에 강조하고 싶다. 결정론과 운명론으로 인생을 산다면 나에게 참된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1905~1980)가 말한 '실존주의'와 '자유의지(Free will)'를 믿고 산다면 인생을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험가 즉, 진정한 주체로써 행복을 느끼며 살지 않을까? 걸그룹 카라(KARA)의 노래 'Step(2011)'의 가사 "내일은 새로울 거야 기대를 높여 그게 사는 재미 같아 근심은 날려"처럼 말이다. 반대로 결정론과 운명론을 지지하며 살면, 내가 잘해도 세상의 뜻이고, 내가 못해도 세상의 뜻일 텐데, 사는 게 재미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러한 두 이론을 지지하며 산다면, 이 세상에서 보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상이라는 것은 성과를 평가해서 주는 혜택인데, 앞의 두 이론을 지지하는 세상에서는 대체 누가 이러한 보상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보상 없는 세상에 의욕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실존주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이론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는 이론이다. 연필은 필기라는 본질을 위해 존재한다. 우연히 연필이라는 존재가 생겨서 필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필기라는 목적을 위해서 연필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우개 또한 지우기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은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임무나 의무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임신 초기에는 성별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존재가 먼저이고, 이후에 본질을 찾는 주체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는 상태에서 본질을 좇는 존재이다. 26살에 글을 쓰는 나는 글을 쓰는 게 내 본질일까? 나는 나중에 다른 본질이 나를 찾아와서 나라는 주체를 정의할 수도 있고, 평생 나의 본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운명이란 내가 추구하는 본질을 이루었을 때 존재하고, 결정이라는 것은 내가 본질을 고민할 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