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대학에서 인문대학으로, 분교에서 본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도서는 니체(F.W.Nietzsche,1844~1900)의 책이고, 논문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철학자는 칸트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만큼 칸트가 현대 철학계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누군가는 칸트 이전의 철학은 칸트를 통과하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칸트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많은 학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 나는 칸트를 철학 교양 과목에서 처음 접했다. 내가 강의에서 배운 칸트의 철학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맞서는 의무론이었다. 또한 교양 강의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철학서적을 읽을 때 칸트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를 언급한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1473~1543)는 천동설(天動說)을 부정하고 지동설(地動說 : 태양중심설)을 주장한 폴란드의 천문학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전에는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ios, 100?~170?)가 천동설을 주장했다.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존재의 주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칸트 그의 주장 이전에는 사물이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사물을 지각한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이론으로 인해 사물의 존재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임으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사물의 존재 원인이 사물 자체에서 관찰자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우주의 중심이 바뀐 것처럼, 존재의 주체도 뒤바뀌었다. 그래서 칸트는 그에 의해 생겨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칭한다.
나에게도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같은 큰 전환이 두 가지 생겼다. 첫째로, 이번 학기부터는 인문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다. 나는 원래 공학대학 소속인데 복수전공으로 인해 이번 학기부터 인문대학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즉, 이과에서 문과로 옮겨간 셈이다. 두 번째 큰 변화는 수업을 듣는 캠퍼스가 바뀌었다. 나는 원래 분교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복수 전공하는 학과가 본교에 있어서 이번 학기부터는 본교에서 학교생활을 한다. 전혀 다른 대학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몇몇 대학들은 캠퍼스가 여러 곳이다. 예를 들어서, 성균관대학교는 인문계열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학계열은 수원에서 학교를 다닌다. 따라서 영어영문학과는 인문사회과학 캠퍼스(서울)에만 있고, 전기전자공학과는 자연과학 캠퍼스(수원)에만 있다. 이와 같은 경우를 이원화 캠퍼스라고 한다. 이 같은 이원화 캠퍼스는 다른 캠퍼스를 다녀도 같은 학교로 취급된다. 하지만 고려대학교는 서울캠퍼스에도 영어영문학과가 있고, 세종캠퍼스에도 영어영문학과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본교와 분교로 나뉜다. 본교와 분교는 이름만 공유하고 완전히 다른 학교이다. 몇몇 대학교들은 분교와 본교가 사이가 좋지 않다. 본교와 분교의 입시 성적은 크게 차이 나는데 같은 학교 동문으로 취급받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 본교 학생들의 입장이다.
나는 본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위에서 언급한 본교 학생들의 입장이 사실인지 모른다. 그저 도시괴담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입장으로 분교 학생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분교에서 본교로 온 나는 여기에서 어떻게 될까? 분교에서 본교로 온 것뿐만 아니라 나는 공대에서 인문대로 왔다. 나는 타자 중에 타자이다. 그런 내가 그들(본교 인문대생)에게 섞일 수 있을까? 앞에서 말한 두 가지 큰 변화가 나에게 부수적인 큰 변화를 하나 가져올 수 있다. 그 변화는 동일자에서 타자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한다면 나는 불완전하지만 본교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동일자화 될 것이고, 적응하지 못한다면 타자가 될 것이다. 과연 나는 본교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와 같이 지낼 것인지 아니면 타자가 되어 또 다른 변화를 겪고 혼자 학교를 다닐 것인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과연 내 4학년 1학기는 어떤 학기가 될까?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너무 외롭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 고민일까? 나는 철학을 공부하려 본교에 온 것이지, 친구를 사귀려 이곳에 온 것이 아닌데? 아!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세 번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맞이했다. 과거에는 누군가와 어울리려 학교에 가고, 전공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본질을 앞 써는 학교생활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반대로 내 전공이 인간관계를 앞썬다. 이 또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