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내세우지 말고
"헤어에센스는 미끈거릴 것 같아서 잘 안 바르게 돼."
오래전에 써 본 실리콘 계열 에센스에 대한 기억 때문에 머리카락에 뭘 바르는 게 꺼려져요.
요즘 나온 제품들은 아주 쏙쏙 흡수되지만 선입견을 못 버려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친구들과 수다 떨다 저 말을 했더니 선입견 얘긴 꺼내기도 전에 대뜸 이런 대답이 날아듭니다.
"비싼 거 써!"
아유, 저것을 콱!
식당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것보다 많은 앞접시를 쓰게 됐어요.
위생의 문제도 아니고 전 입맛도 무뎌서 전혀 개의치 않지만 닭볶음탕 양념이 묻은 접시에 동치미 막국수를 덜어먹긴 싫다나.
그 외에도 집게랑 가위를 달라, 국자는 없냐, 이것 좀 더 달라..
프랜차이즈 식당이라 딱히 운영이 미흡했던 건 아닌데도 그날따라 뭘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그래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신 게 고마워서 나오기 전, 한 명씩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에 식탁을 좀 정리했거든요. 그래봤자 쓰레기 버리고, 잔반이나 수저들을 한 군데로 모으는 수준.
그걸 보고 저것이 또 시비를 겁니다.
"돈 내고 먹는 건데 그런 일을 니가 왜 해? 니네 동네라고 이미지 관리하냐?"
읭???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벌써 27년째인데 저것의 말투는 참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어렸을 땐 한 번씩 들이받기도 했는데 다른 셋이 평화주의자라서 저만 걸고넘어지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된달까.
안 맞아요, 그냥.
각지에 흩어져 사는 데다 다섯 모두 직업이 있고, 넷은 가정이 있고, 셋은 어린 자녀도 있고 그런 사정이라 자주 만나진 못해요.
대신 단체톡이 활발하고, 생일 때는 각자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요.
1년에 한 번 모이는 이번 만남이 마침 한 친구의 생일 코앞이라 자연스레 생일 선물 얘기가 나왔어요.
커피 쿠폰 정도로 시작했다가 최근에는 3~4만 원 수준에서 하니까, 그 돈을 모아서 큰 선물 하나를 주자고요.
3만 원으로 의견을 모아가던 중에 저것이 "2만 원씩 하면 안 되겠나. 돈 나갈 데도 많은데."라고 합니다.
응, 그렇겠지.
제주도 2박 3일 라운딩 잡혀 있으시고, 리쥬란 시술받고서 80ml에 4만 원이 넘는 크림도 바르셔야 하고, 과일은 백화점에서 사 드셔야 하니까.
툭툭 내뱉는 무신경한 말들이 귀에 걸리지만 악의가 없으니까, 오랜 사이니까 참아오던 것에 회의감이 듭니다.
만남.
ㄴ, ㅁ. 각지게 생긴 자음들끼리 만났지만 어감이 동글동글해요.
마치 보듬어 안는 듯.
만남을 통해 그렇게 뾰족한 부분을 둥글리며 살아야 하는데 '나'만 강조하면 그런 예쁜 관계가 될 수 없겠죠.
무슨 정의의 사도 납셨다고 저것의 무례함에 매번 열을 내는지, 저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관계를 끊어내는 쉬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그만둬야겠죠?